[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01. 전례에서 이뤄지는 그리스도 행위(「가톨릭 교회 교리서」 1084~1090항)
전례 안에서 ‘감사’와 ‘찬미’가 솟아나지 않는다면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해 강생하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당신의 ‘말씀’”과 모든 선물을 포함하는 ‘선물’, 곧 ‘성령’”(1082)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 일이 전례 안에서 실현됩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걸작’인 신약의 성사들을 만들어내는 장인(匠人)”이시고, 우리는 성사를 통하여 “성사들 안에 현존”(1088)하시는 그리스도와 “결합”(1089)합니다. 이렇듯 전례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행위와 성령의 힘으로”(1084)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전례’(Leitourgia)란 이 은혜에 감사하여 아버지께 드리는 “예배의 거행”(1070)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감사’입니다. 선물을 받는데 감사가 나오지 않으면 그 선물의 가치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선물을 받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전례에서 감사가 나오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진리’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요한 4,23)라고 하셨는데, 이때 ‘영’은 ‘성령’(성사)과 가깝고 ‘진리’는 ‘영’에 대한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런 의미로 ‘성찬의 전례’만으로는 전례가 완성되지 못합니다. 그 성찬 전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말씀의 전례’도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의 전례’는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진리로 성찬 전례의 의미를 깨닫게 만드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례가 참으로 구원을 받은 이들의 예배가 됩니다. 배우 겸 방송인 문천식씨가 한 TV 방송에 나와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어린 아들 때문입니다. 그의 아들은 선천성 화염상모반이라는 희소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이 질환은 모세혈관으로 이뤄진 양성종양으로 붉은 반점이 피부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이는 태어난 지 6일 만에 수술해야 했고, 수면 마취 12번, 전체 레이저 시술은 17번을 받았습니다. 갓 태어난 작은 아기가 수많은 주삿바늘을 꽂고 수술받아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 마음은 찢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을 원망할 만도 하지만 문천식씨 부부는 아기 첫 돌 때 이러한 편지를 읽어줍니다. “지난 일 년간 엄마·아빠가 눈물로 기도하며 깨달은 것이 있단다. 우리가 널 키우고 걷게 하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네가 우리를 바로 서게 만들더라. 세상에 널 만드시고 가족으로 만들어주신 하느님께 영광을.” 받은 선물에 감사하여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분명 아기는 부부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우리에겐 성령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선물로만은 하느님께 찬미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 선물의 가치를 밝혀주는 ‘진리’가 함께 할 때 참된 감사가 나옵니다. 이렇게 영과 진리가 합쳐진 전례만이 참된 감사가 솟구치게 하고 그 감사 때문에 전례 참여자들이 변화합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만이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EBS ‘지식채널 e’의 ‘엄마가 울었다’ 편에서 한 중학교 아이들에게 이런 실험을 하였습니다. 30일 동안 부모님을 칭찬하는 일기를 써 오라고 한 것입니다. 처음엔 부모를 칭찬하기가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30일 동안 매일 부모에게 감사한 것을 찾아내다 보니 아이들이 오히려 변하였습니다. “그냥 밥만 먹고 잠만 자는 곳이었는데, 요즘 집이 좋아요.” “칭찬을 마친 내가 참 대견스러워요. 나도 참 괜찮은 사람 같아요.” “부모님을 칭찬하면서 나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요.” 이것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의 결과와 같습니다. 전례 안에 ‘영과 진리’가 있으면 반드시 감사가 솟고 그 감사가 사람을 자라게 합니다. 그래서 감사가 없는 예배는 더는 전례일 수 없습니다. 영과 진리 중 무엇 하나가 빠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1월 1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