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03. 가치에 대한 성찰 - "사랑이 필요해!”(「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사랑,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타인과 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운동입니다. 친절하게 행동하고 믿음을 견지하며 공동선을 위해 일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며 그런 삶을 위해서는 용기와 기백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윤리를 조롱하는 번지르르한 말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렛 어스 드림」 중) 현실 속에서 ‘사랑’의 현주소는? 혈연과 연고 의식이 강한 한국인들은 정이 많은 편이라고 하지요? ‘정’은 한국인을 대표하는 키워드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을 통해 유대감과 공동체의식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갈등 현장에서는 적대와 분노가 많습니다. 자리 싸움, 밥그릇 싸움이니 정과 사랑은 찾아볼 수 없고 예의고 체면이고 따질 겨를이 없죠. 그런데 그런 갈등 현장이 아니더라도 사랑이 실종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일상에서도 가족 간, 지인 간 지나친 대립이 두드러지기도 합니다. 특히 사회현안이나 정치 문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순간에 ‘사랑’이 있다면 하고 아쉬움을 갖습니다. 간혹 노사대립 현장을 갑니다. 전문가도 아닌 신부가 노사문제에 끼어드는 게 부담은 되지만 중재하고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해 갑니다. 안타까운 것은 갈등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그런 농성장에서 발언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서로 사랑하라는 이야기를 했다가 썰렁한 반응을 사기도 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이야기는 친한 사이에만, 좋은 상황에서만, 아니면 성당에서만 사용하는 말인 걸까요? 대안을 만드는 사랑의 힘 모든 사회현안이 심각하지만 그 중에서도 노사문제는 매우 첨예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대량해고, 실업사태가 악화되고 있고 동시에 자영업자들의 어려움도 막심합니다. 양쪽 모두에게 절박한 문제이니 사랑의 마음으로 종업원을 해고하지 말라고 강요할 수만도 없고 종업원들에게도 해고가 불가피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처지를 헤아리는 상생의 의지마저 포기한다면 궁극적으로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현실의 문제들은 이해관계가 얽힌 일들이고 냉정한 분석, 법리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사안이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법과 제도는 사각지대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허점을 발견하고 채우는 노력이 필요한데 이는 결국 인권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 협력하려는 성숙한 자세, 존중하고 배려하는 노력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 원천은 윤리, 신앙, 도덕, 그리고 사랑이라는 보편적 가치입니다. 그래서 사회 문제에 대해 가장 위대한 길은 ‘사랑의 길’이라고 가톨릭교회는 늘 가르쳐 왔고 예수님께서도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마태 5,44) 절실히 필요한 사랑 현안 해결을 위해 사랑이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원수를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고 결국 사랑의 부재함 속에 살 수밖에 없다는 뜻에 머뭅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결국 폭력과 죽음의 공간입니다. 물론 나약한 인간이므로 현실이 괴로워 사랑이 낯설 수도 있고, 사랑을 체험한 적이 없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더 사랑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현장’을 다니며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를 드리곤 합니다.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지만 많은 분들이 고마워합니다. 진정성만 있다면 따스한 악수와 마음을 전하며 ‘힘내세요’, ‘기도합니다’의 작은 말 한 마디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그곳에서 느낀 것은 ‘사랑이 필요 없다’가 아니라 ‘사랑이 너무도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를 개선하고 바꾸는 데는 분명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한 순간에도 눈 녹듯이 바뀔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마음을 녹이고 계속해서 살아갈 용기와 힘을 줍니다. 그래서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도 사랑의 계명은 정치생활의 가장 심오한 의미를 일깨우고, 그것이 참된 공동체를 만든다고 합니다.(392항) 모든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는 분명합니다. 바로 사랑과 용서이며 이것이 시작과 끝이 될 때 개인과 사회가 평화로워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두움 속에서 빛과 같은 사랑을 실천하는 이들입니다. “평화 그 자체는 사랑의 행위이며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94항) [가톨릭신문, 2021년 1월 17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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