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신부의 사회교리 해설] “인간존엄의 다른 표현인 형제애” 마리아 : 안젤라, 글라라 알지? 글쎄 글라라가 우리 쁘레시디움에 들어오겠대! 안젤라 : 아 정말요? 정말 기쁜 소식이네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마리아 : 근데 글라라와 이야길 나누어보니, 마리아가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모습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하더라고. 다 안젤라 덕분이야! 안젤라 : 아니에요! 저는 제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지요! 알아보기 – 초대교회와 형제애 초대교회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사도 1,9), 성령강림 사건이 일어난 뒤에 드디어 교회의 시대가 시작되었지요? 그렇게 해서 최초에 생긴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초대교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는 언제나 초대교회의 모습을 이상과 쇄신의 기준으로 제시합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빵을 나누며, 형제애를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라는 말씀에 초대 교회의 아름다운 모습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신자들은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을 희망하며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공동체의 결실은 친교와 형제애를 나누는 것으로 열매 맺는데, 사도행전은 모든 신자들이 기꺼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재산을 나누며 하느님을 찬미했다고 합니다.(사도 2,44-47) 친교를 나누는 것은 영적·물질적 두 차원이 모두 이루어져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삶을 묵상하는 것은 신앙의 본질을 찾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심화하기 – 형제애, 가톨릭교회의 핵심 가르침 사회교리의 원천은 성경과 성전(聖傳)의 핵심인 ‘하느님의 가르침과 사랑’입니다. 성부에게서 흘러나오는 가르침과 사랑은 우리에게 전해지고, 그 사랑을 받은 하느님 백성들은 이웃과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간추린사회교리 4항) 그리스도인의 삶은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이고(2코린 5,15), 이웃을 위해 사는 것임을 (마태 25장, 최후의 심판) 가톨릭교회는 분명히 천명합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사회교리를 통해 공동체와 이웃을 위한 애덕이나 봉사를 권고하며 그 최우선 대상은 바로 아파하는 이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 이웃을 형제라고 합니다.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며 힘들고 고단한 이웃이 참 많습니다. 세상과 사회는 너무도 빨리 변화하고 발전하지만 언제나 그 발전은 소외와 무관심, 고통과 외면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가톨릭교회는 그런 현장에 손을 뻗으며 치유와 생명을 이루려 합니다. 레지오의 가르침 – 배반자의 쌀쌀한 얼굴도 마다않으셨던 예수님처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회칙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을 반포하셨습니다.(2020년 10월3일) 인간은 누구나 존재의 타고난 가치를 지니고 태어나기에 인간존엄은 결코 축소될 수 없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형제적 사랑만이 세상과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이끈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코비드19로 고통받는 세상에 백신과 치료약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인류에게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서로를 형제로 여기는 형제애라고 말씀하십니다. 인간 존재는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 주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발전할 수 없으며 충만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과의 만남이 없다면 자신의 존재를 온전히 인식하지도 못합니다.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없다면 나 자신과도 효과적으로 소통하지 못합니다. 다른 이들과 관계가 없다면 사랑할 구체적인 얼굴들이 없다면 아무도 삶의 참다운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참다운 인간 존재의 신비입니다. 유대, 친교, 형제애가 있는 곳에 삶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모든 형제들 87항> 레지오 교본에서도 너무나 아름다운 표현으로 형제애를 강조합니다. 교본 39장 레지오 사도직 주안점들이 나열되는데 그중에서도 “무한히 값진 영혼들을 끝없는 인내와 친절로 돌보아야 한다.”고 합니다. 따뜻한 마음, 다정한 태도, 이웃을 정성껏 도와주겠다는 마음, 심지어 완고한 사람조차 사랑으로 품어주는 마음을 통해 레지오의 사도직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실천하기 – 우리 신앙 선조들의 아름다운 삶 김대건 신부님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는 오늘날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혹독한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켜왔음을 마음에 깊이 새겨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가난과 박해 속에서 간직한 신앙이며 동시에 이웃과 함께 한 신앙이었습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이 박해 상황에서도 신자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콩 한 쪽도 나누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를 돌봤던 애덕 실천의 삶은 잘 알려져 있다. 옷이 없는 이들에게 자기가 입던 옷을 벗어주고 흉년이 되면 주변의 어려운 이들을 백방으로 도왔던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 새 옷 한 벌이라도 생기면 그 옷을 헐벗은 이에게 주고 마을 사람 모두를 배려해 도왔던 김사집 프란치스코 복자 등 순교자들이 남긴 사례는 차고 넘친다.”고 합니다.(가톨릭신문, “보편적 형제애”. 이주연)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9) 우리는 이 말씀이 실행될 때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선하신 뜻, 우리의 선한 지향이 이루어짐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29-31)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6월호, 이주형 세례자 요한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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