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27. 성체성사 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48~1355항)
성찬례의 궁극적 목적은 ‘신앙 공동체’ 형성에 있다 가톨릭교회에서 ‘미사’(Missa)라는 용어는 ‘보내다’, ‘파견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미떼레’(Mittere)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그러니 미사는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미사 때 갱신한 그리스도와의 계약인 이웃사랑 실천을 위해 ‘파견되는 것’이 목적이라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부모가 가르침과 양식으로 자녀를 양육할 때, 궁극적으로는 사회에 나가 친구들을 사귈 줄 아는 존재가 되는 것을 바라는 마음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미사가 필요한 이유도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믿음과 사랑의 그리스도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함입니다. 사랑의 궁극적 목적은 공동체 형성에 있습니다. 하느님 본성이 사랑이시기에 세 분이 한 하느님이 되시는 삼위일체 공동체이십니다. 그런데 사랑은 또한 그 공동체가 확장되게 만드는 본성도 있습니다. 부부가 사랑하면 자녀를 낳아 그 사랑이 자녀에게로 확장되는 것처럼, 사랑의 본성은 받은 사랑에서 더 넓은 사랑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사랑의 공동체를 더 넓히기 위해 세상에 오셔서 교회 공동체를 세우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사랑으로 창조된 교회 공동체도 세상으로 나아가 더 큰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의무를 지닙니다. 이를 위해 먼저 수직적 친교의 시간인 성찬례가 필요한 것입니다. 수직적 친교를 통해 사랑의 공동체를 먼저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수평적 친교의 공동체도 형성할 능력을 지니지 못합니다. 어떤 TV에 방영된 할머니는 시집올 때는 젊고 예뻤지만, 남편에게 심한 폭력을 당하여 마음의 문이 닫혔습니다. 남편이 죽자 아이들이 무시 받지 않게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산에서 톱질을 하며 홀로 자녀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자녀가 이미 다 성장했지만, 그분은 여전히 산에 올라 보통 사람이 들기도 어려운 커다란 나무를 메고 내려옵니다. 눈에서 고름이 나와 할머니의 건강을 위해 제작팀에서 의료진을 집으로 모셔왔지만, 할머니는 톱을 휘두르며 자기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위협합니다. 할머니에게 그들은 그저 자녀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무디게 만드는 방해꾼일 뿐입니다. (출처: ‘긴급 출동한 의료팀이 톱으로 위협당함’, 유튜브 채널, ‘우와한 비디오’) 할머니가 이렇게 세상과 단절된 이유는 사랑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폭력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 우선 하느님과 친교를 이룹니다. ‘말씀의 전례’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하게 되고, ‘성찬의 전례’를 통해 그 사랑을 확인합니다. 이젠 세상으로 그 사랑을 확장할 때입니다. 그래서 미사가 끝날 때,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만큼 큰 사랑은 없고,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끈끈한 사랑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만큼 큰 선교 방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라고 하시고,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라고도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 때는 어떻게 복음 선포가 이루어졌을까요? 우선 신자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사도 2,42) 하였습니다. 이는 미사 전례에 해당하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공통된 한 아버지를 둔 한 형제자매의 가족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사도 2,44) 하였습니다. 한 핏줄로 엮인 가족에게서도 실현되기 힘든 이 나눔 공동체는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습니다.”(사도 2,47) 따라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사도 2,47)이 늘어났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사와 기도를 통해 얻은 에너지로 사랑의 나눔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안에 머무는 일입니다. 이 때문에 성찬례는 “모두 모임”(1348)으로 시작하여, “계약의 백성”(527)으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형성되도록 파견받는 것으로 끝맺는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7월 11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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