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형 신부의 사회교리 해설] “공정에 대한 생각” 안젤라 : 단장님, 저희 집 아들들이 공정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던데요, 큰 애는 어려운 사람들을 먼저 도와주는 게 공정이라고 하고, 작은 애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과 능력이 공정이라고 하는 거예요. 옆에서 보면서 무슨 이야길 해줘야 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마리아 : 요즘 우리 사회가 공정에 대한 논란이 많지요. 알아보기 – 공정함에 대하여 공정에 대한 논란이 뜨겁습니다. 한쪽에서는 결과와 경쟁, 능력에 무게를 두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분배, 돌봄을 강조합니다. 양자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겠지만 입장 차이와 갈등이 발생합니다. 각박해진 세상살이 속에서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박탈감, 상실감, 행복하지 않음을 체험하기 때문일까요? 공정을 둘러싼 논쟁이 매우 감정적인 대립합니다. 벌써 작년 일입니다.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사건이 사회적 갈등으로 번졌습니다. 취업 준비에 매진한 취준생들은 정규직 전환을 반대했고,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비정규직 종사자들의 의견이 충돌한 것입니다. 취업뿐만 아니라 입시와 진학, 주택청약과 납세 등 모든 분야에서 공정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습니다. 게다가 정책과 제도의 허점, 정권과 위정자들의 과실이 빚어낸 결과가 그런 현실을 더 아프게 합니다. 심화하기 – 경쟁과 돌봄 모두 건강하게 작동해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경쟁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경쟁만 있어서는 곤란하겠죠. 경쟁과 돌봄은 공존해야 합니다. 관건은 이것이 일상이나 삶의 자리에서 적절하게 제 기능을 하느냐입니다. 불평등이 심각한 상황이라면 공정한 경쟁은 불가능합니다. 공정한 경쟁이 되도록 해야겠지요. 돌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체는 아름다운 것이나 그것이 남발되고 변질되어 본래의 목적이 아닌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경쟁과 도덕 모두 도덕이나 윤리성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갈등하는 현실이지만 경쟁과 돌봄 모두 올바르게 작동해야 건강한 사회가 됩니다. 이런 사실을 우리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힘든 현실에서 누군가를 돌볼 여력은 고사하고 나 하나를 건사할 형편도 안 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교리의 가르침 가톨릭교회는 정의에 대해 그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간추린사회교리 201항) 그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란 무엇입니까? 그가 성실히 노력하여 얻은 성취, 혹은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그가 얻어야 할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이해관계를 명확히 조정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가 현실적 이익과 재물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는 한 만족과 감사보다는 불만과 적개심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공정을 이야기하며 경쟁과 돌봄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톨릭사회교리의 가르침이 인간 존엄, 공동선과 연대성 등의 기본원리를 제시하는 그 바탕은 나눔과 사랑입니다. 더욱이 그것은 재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당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비롯됩니다. 현세적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추구할 때 분명 우리는 공정논란에 숨어 있는 이해관계에서 시작되는 적대적 논쟁을 멈출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나누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기쁘게 나누기 위해 마음으로부터 나누기 위해 나누지 않을 때 슬픔과 절망에 빠집니다. ‘복음이 나에게 물었다’ 중 애르메스 론키 레지오의 가르침 – 다리를 놓는 일 레지오 교본을 보다가 ‘다리를 놓는 일’이라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의 기도처럼 레지오 단원의 노력을 통해 갈등과 분쟁의 현장에서 중재와 화해의 역할이 수행되길 바란다는 의미로 보입니다. “레지오는 세상의 분열을 일삼는 자들이나 수없이 많은 악의 세력들과 맞서 싸우는 일에 그 뚜렷한 목표를 두어야 한다.”(제39장 30. 다리를 놓는 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악의 세력이 있지요? 그리고 악의 모든 세력을 비롯해서 욕심과 탐욕, 분열과 분쟁, 평화를 해치는 모든 것과 우리 자신의 나태함, 이웃에 무관심함, 혹은 신앙에 충실하지 못함도 포함될 것입니다. 또한 앞서 저는 하느님과 신앙을 추구할 때 적대적 논쟁이 끝날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바로 성숙함입니다. 아이들은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게 많지요? 그러다 보니 고집을 피우고 떼를 쓰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른은 다르지 않을까요?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인격과 덕이 쌓인 어른이라면 그는 양보, 희생, 배려를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회문제의 본질은 욕심과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미성숙함 때문입니다.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이상적인 길은 우리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전해 받은 신앙의 가르침은 나누고 사랑하도록 창조되었고, 그것이 기쁨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모두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도록 성찰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정의는 그에 상응하는 사추덕의 행사를 수반하는 가치이다. 가장 고전적인 공식에 따르면, 정의는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이다.” 주관적인 기준에서, 정의가 다른 사람을 한 인격체로 인정하려는 의지에 바탕을 둔 행위라고 한다면, 객관적인 기준에서, 정의는 상호 주관적이고 사회적인 영역에 확고한 도덕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간추린사회교리 201항>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1년 8월호, 이주형 세례자요한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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