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승천 대축일 특집] 성모 영면 성당의 비밀
‘비어 있는 석관’ 성모님의 육신도 승천하셨다는 표징 - 성모 마리아의 빈 무덤은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상징이 됐다. 성모 마리아의 석관이 있는 성모 영면 성당 외부 모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교회는 8월 15일을 성모 승천 대축일로 성대하게 지낸다. 성모 승천은 마리아에 대한 교의(敎義) 중 하나다. 교의는 성경이나 성전(聖傳)에 기초를 둔 믿을 교리를 말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성지순례 순례지 중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성모 영면 성당’이다. 영원히 잠든 성모와 하늘로 오른 성모. 도저히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이 사실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성모 영면 성당은 마리아의 무덤? 이스라엘 예루살렘 시온산. 최후의 만찬 성당 옆에는 성모 영면 성당이 있다. 시계탑과 원뿔형 지붕, 지붕을 둘러싼 네 개의 작은 탑이 인상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성당이다. 성당 순례자들이 반드시 찾는 곳은 바로 성당 내부의 석관이다. 석관에는 실제 사람 크기로 두 손을 모은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의 마리아가 조각돼 있다. 그렇다면 이 석관 안에 마리아의 시신이 있는 것일까. 석관 속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생각해볼 점이 있다. 예루살렘의 동쪽 올리브산 근처에는 ‘마리아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터키 성지순례를 한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터키 에페소의 ‘성모님의 집’ 역시 마리아가 지상에서의 마지막을 지낸 곳이라고 전해지는 장소다. 이제 앞서 물은 질문의 답을 해보자면, 석관 속은 비어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부들은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을 통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셨다”고 선언한다.(59항) 마리아의 승천이란 영혼만이 아니라 육신까지도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리아의 빈 무덤은 하늘로 올라간 마리아의 육신이 지상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상징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승천’이 아닌 ‘영면’이란 단어를 사용했을까. 성모 영면(Dormitio)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알기 위해선 4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에 이미 ‘성모 승천’에 관한 믿음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신자들은 8월 15일을 ‘하느님의 어머니’ 축일로 삼고 있었다. 이 즈음의 신자들 사이에는 마리아의 마지막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퍼져 있었다. 마리아가 무덤으로 옮겨지던 중 살아나 승천했다거나, 죽은 지 3일 후에 부활해 승천했다거나, 살아있는 중에 승천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시기가 예수님의 승천 3일 후, 50일 후라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그런데 순교자나 성인들이 사망한 날을 축일로 삼아 기념하는 관습이 생기자 6세기경에는 ‘하느님의 어머니’ 축일의 이름도 ‘성모 영면 축일’로 변하게 됐다. 이때 ‘성모 영면’이라는 말이 정착됐고, 마리아가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영면’이라는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이다. 이후 7세기에는 ‘성모 영면 축일’이 서방 교회의 축일표에도 포함됐는데, 이때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날로 이름이 다시 바뀌었다. -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모 영면 성당 내부에 있는 석관. 잠든 모습의 성모 마리아가 조각돼 있다.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우리의 믿음, 성모 승천 공식적으로 성모 승천 교의가 선포된 것은 1950년 11월 1일 비오 12세 교황의 교황령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서다. 신자들이 성모 승천을 믿은 것은 70여 년 밖에 되지 않는 것 아닌가하는 오해를 할 수도 있는 대목이지만, 실상은 반대다. 비록 교의로 선포되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교부들과 신학자들도 성모 승천을 가르쳤고 신자들 역시 성모 승천을 믿어왔다. 그리고 제1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한 추기경들을 필두로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성모 승천을 교의로 선포해 줄 것을 교황청에 청원한 것도 교의 선포의 계기가 됐다. 비오 12세 교황도 교황령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선포하면서 다마스커스의 성 요한, 콘스탄티노플의 제르마노 등 교부들이 성경을 바탕으로 가르친 내용을 인용했다. 성경은 성모 영면도, 성모 승천도 직접 묘사하지 않지만, 성모 승천 교의를 뒷받침해준다. 비오 12세 교황은 성경의 내용을 들어 ▲ 마리아가 아들 그리스도와 내밀하게 결합되고 그분의 운명에 항상 참여했고 ▲ 계명을 완전하게 준수하시는 그리스도는 어머니인 마리아를 공경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성모 승천의 근거를 설명했다. 교의신학자로서 「마리아-은총의 어머니」를 저술한 조규만 주교는 “예수가 참으로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을 수 있고,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고, 나자렛 마리아가 예수의 어머니라는 것을 믿을 수 있다면 성모 마리아 승천을 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예수 부활을 믿을 수 있고, 육신의 부활을 믿을 수 있다면 성모 마리아의 승천도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 주교는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고 올바른 선택을 믿을 수 있다면 성모님에게 부여된 모든 특권을 믿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희망, 성모 승천 그렇기에 주님 승천(Ascensio)과 성모 승천(Assumptio)은 구별된다. 성모 승천은 마리아가 원죄 없는 동정녀로서 그리스도를 낳고 기르고 평생 그리스도를 따른 사람이었기에, 그토록 특별하게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었기에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하늘로 오르셨지만,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해 하느님께 들어 올림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성모 승천을 ‘부르심을 받은 승천’이라는 의미로 몽소승천(蒙召昇天)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인 마리아가 들어 올림을 받았다는 것, 즉 승천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우리 역시 승천할 수 있다는 희망의 표징이다.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권고 「마리아 공경」을 통해 “성모 승천 대축일은 마리아의 완전하심과 복되심, 동정의 몸과 흠없는 영혼이 누리시는 영광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음을 기념하는 축제일”이라며 “따라서 이날은 교회와 전 인류에게 종국적인 희망이 실현됨을 보여주는 이미지와 위로의 증거를 나타내는 축일, 즉 ‘같은 피와 살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형제로 삼아주신 모든 이들이 마침내 이 충만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임을 기뻐하는 축일”이라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마리아가 이미 승천했다는 사실은 마리아가 천상에서 우리를 위해 돕고 있다는 것도 말해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에서 “마리아는 ‘이미 하늘에 올림을 받으셨기’ 때문에 구세주의 중개에 종속된 당신의 중재를 통해 특별한 방식으로 지상의 나그네인 교회가 모든 성인의 종말론적 천상 실재에 결합하도록 도와주신다”고 가르쳤다. [가톨릭신문, 2021년 8월 15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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