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31. 성체성사 ⑨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82~1390항)
축성된 제단에서만 성찬례가 거행되어야 하는 이유 미국 ‘스탠퍼드대학’이 설립되게 된 계기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한 부부의 아들이 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스탠퍼드였습니다. 그는 하버드대학을 사랑했습니다. 부모는 아들의 뜻을 기념하기 위해 하버드 대학에 그의 동상을 세워줄 것을 청했습니다. 그 답례로 대학에 필요한 건물 하나를 지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부부의 행색이 초라했기에 총장은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런 행색의 부부가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재력이 있을 리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이 홀대받는다는 확신을 한 이 부부는 그냥 아이 이름을 딴 학교를 짓기로 합니다. 그것이 지금 하버드대 버금가는 ‘스탠퍼드 대학’입니다. 돼지에게 진주목걸이가 합당할까요? 가치 있는 것은 그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생명의 양식’의 가치를 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제단’입니다. 성체를 더러운 손으로 받는 것이 성체에 합당하지 않은 사람임을 증명하듯, 미사를 드릴 때 제대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을 자격이 있음을 증명해 줍니다. 따라서 교회는 성찬례가 성당 내에 있는 ‘축성된 거룩한 제단’에서만 행해지기를 권고합니다. 교회는 제대를 우선 “주님의 십자가”(1182)로 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께 제물로 봉헌되신 장소입니다. 당시 십자가는 처형 도구에 불과했지만, 헬레나 성녀가 찾아서 로마로 가져온 십자가는 교회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제단이 십자가로 상징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성찬례에서 주님 수난과 같은 파스카의 사건이 재현된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동방의 일부 전례 전통에서는 제대가 “무덤”(1182)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니코데모가 향료와 아마포를 제공한 것으로 둘러싸였고, 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 봉헌한 새 무덤에 묻혔습니다.(요한 19,38-42참조) 당시 유다 지도자들이 죽인 예수님의 시신을 모시는 것은 커다란 자기희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제단이 ‘무덤’을 상징한다는 것은, 우리 또한 성모 마리아께서 돌에 맞아 죽을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성령을 통해 아드님을 당신 태중에 잉태하시는 믿음의 모험에 동참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성모 마리아처럼 자기 봉헌으로 “아멘!”하며 그리스도의 무덤이 된 사람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그 때문에 제단은 또한 “그리스도 바로 그분”(1383)이 됩니다. 처음부터 하느님은 인간들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해 합당한 자리를 찾으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죄로 인해 저주받은 땅이 되어버렸습니다.(창세 3,17 참조) 그래서 구약엔 땅에서 가장 멀고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 하느님께서 내려오시는 장소였습니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인간들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오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내려오시는 산과 닮은 무언가를 만들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것이 성막이고 그 내려오시는 장소가 ‘계약의 궤’입니다. 계약의 궤 위에 제단에 봉헌된 소의 피가 뿌려질 때 주님께서 그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계약의 궤 안에는 두 개의 ‘계명 판’이 있었습니다.(히브 9,4) 십계명은 당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신 무덤은 그래서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사람과 같습니다. 성모 호칭기도에서 마리아를 상징적으로 “계약의 궤”라고 부르는 이유는 당신 태중에 모신 아드님이 곧 하느님의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당신을 “주님의 종”으로 고백하시며 진정으로 거룩한 제단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모심은 내 뜻을 버리고 그분의 뜻을 따름을 의미하기에 ‘공복재’도 의미를 가집니다. 공복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손님이 되시는 그 순간에 걸맞은 존경과 정중함과 기쁨”(1387)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분별없이 성체 성혈을 먹고 마심은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1코린 11,27 참조) 제대는 우리 자신이 성모 마리아를 닮은 순결하고 거룩한 ‘십자가’요, ‘무덤’이요, ‘계약의 궤’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그래서 성당의 축성된 거룩한 제단에서만 미사가 거행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8월 15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