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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133: 성체성사 11(1402~1419항)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8-31 조회수1,237 추천수0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33. 성체성사 ⑪ (「가톨릭 교회 교리서」 1402~1419항)


마지막 때 주님 앞에 서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려면

 

 

한번은 제가 교실에서 강의할 때 늦어서 강의실 문을 못 열고 쭈뼛쭈뼛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강의실 문이 유리였기 때문에 강단에서 사람의 형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이크로 괜찮으니 들어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후다닥 도망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이의 관심이 문으로 쏠렸기 때문입니다. 누구 앞에 나설 때는 반드시 그 누군가의 저항을 이길 에너지를 가져야 합니다. 빚을 져서 한 가정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준 사람이 그것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당당하게 그 가족 앞에 나타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 앞에 나서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마지막 때 하느님 앞에 나서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요? 요한묵시록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천상에서 보았는데, 너무 겁이 나서 죽은 듯이 땅에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3년간 같이 생활한 분을 만났는데도 말입니다. 요한은 “나는 그분을 뵙고, 죽은 사람처럼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묵시 1,17)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언젠가 한 번은 이런 부담을 이겨내야 할 때가 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탈출 23,15)라고 하십니다. 분명 그분께 받은 은혜에 합당한 열매들을 들고 가야지, 그렇지 않다면 그분 앞에서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상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창세기의 야곱도 에사우를 만나기 두려웠습니다. 20년 동안 노력해 얻은 재물과 사람들을 자신보다 앞서 에사우에게 선물로 보냈지만 그래도 그의 축복을 가로챈 입장에서 그를 만나는 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야곱이 에사우를 만나기 위해 했던 일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성령의 축복을 받는 시간입니다. 야곱은 밤새 천사와 씨름하며 축복을 청하였습니다. 그 축복이란 성령의 힘으로 그의 정강이가 꺾여 에사우 앞에서 바로 설 수 없는 ‘겸손’이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사우를 보자 일곱 번 절하며 그를 “주님”으로 알아보고 “이 선물을 제 손에서 받아 주십시오. 정녕 제가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듯 주인의 얼굴을 뵙게 되었습니다”(창세 33,10)라고 인사합니다. 성경은 기도를 통해 받는 성령에 대해 말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어 주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에페 1,14)

 

기도를 통해 오시는 성령이 우리 상속의 보증입니다. 이는 마치 이사악을 만나러 오는 신부 레베카가 아브라함이 보낸 폐물과 옷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그 폐물들은 아들 이사악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사악의 신붓감에게 그 선물을 주어 아들에게 합당한 신부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 폐물이 곧 성령을 상징합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통해 우리에게 성령을 베푸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은 새로운 생명의 성사들인 세례와 성체성사의 예형입니다. 그때부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요한 3,5)”(1225) 성사만큼, 특별히 성체성사만큼 성령께서 충만히 임하시는 때는 없습니다.

 

사실 성찬례는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입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참된 감사와 찬미가 솟구칩니다. 성찬례가 감사제(eucharistia)인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제 하느님께 합당한 가죽옷을 입고, 감히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갈라 4,6)라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녀가 아버지께 나아갈 때 무슨 부담이 있겠습니까? 이 믿음이 성찬례가 주는 우리 구원의 열쇠입니다.

 

천상에서도 하느님은 끊임없이 당신의 “온갖 은총과 축복”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찬례는 천상의 영광을 미리 누리는 것”(1402)이기 때문입니다. “정의가 깃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 큰 희망에 대하여 성찬례보다 더 확실한 보증과 분명한 징표는 없습니다.”(1405) 레베카가 아브라함의 선물로 치장하듯, 야곱이 천사의 축복으로 준비하듯, 우리는 성찬례를 통하여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입고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8월 29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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