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서 DOCTRINE

교리 자료실

제목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136: 고해성사 3(1440~1449항)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09-20 조회수1,436 추천수0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36. 고해성사 ③ (「가톨릭 교회 교리서」 1440~1449항)


죄 사함의 권한이 없다면 교회라 불릴 수 없다

 

 

‘교회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 ‘이름’으로 모인다는 말은 단순히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름’은 모든 본성과 권한과 존재 전체를 담는 그릇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습니다. 실존 인물 ‘제리 콘론’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아일랜드 출신 좀도둑 제리는 런던에서 우연히 폭탄 테러에 휘말랍니다. 영국 경찰은 제리를 테러 주동자로 지목하여 아버지를 쏴버리겠다는 협박과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냅니다. 그들은 또한 제리의 아버지까지 공범으로 몰아 종신형에 처합니다.

 

14년 후, 아무 잘못도 없는 아버지는 결국 감옥에서 사망합니다. 아버지는 그저 평범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제리는 정신을 차립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위해 무죄를 입증하려 합니다. 제리는 변호사 가레스에게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검토할 것을 요청하고, 그동안의 모든 일을 녹음해서 보냅니다. 가레스는 끈질기게 진실을 파헤쳤고, 결국 1976년에 제리와 가족, 그리고 친구들은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왜 이 영화 제목이 ‘아버지의 이름으로’일까요? 제리가 ‘아버지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무죄를 입증해야 아버지도 무죄가 됩니다. 자신의 명예가 곧 아버지의 명예입니다. 누군가의 ‘이름’으로 산다는 말은 곧 ‘그 사람으로 산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암행어사는 누구의 이름으로 파견된 것일까요? 임금의 이름으로 파견된 것입니다. 겉모습은 보통 사람이지만 그 사람은 임금의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암행어사는 ‘마패’라는 것으로 임금의 이름으로 파견되었음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임금의 이름을 지녔으면 임금의 권한을 행사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의 이름으로 오셨을까요? 바로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습니다.(요한 5,43 참조) 그래서 아버지와 하나이십니다. 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행사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고 하실 때 사람들은 놀랍니다. 하느님만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1441 참조) 그러나 예수님은 병자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리며 아버지만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시는 것이 곧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음을 증명한다고 말씀하십니다.(요한 10,25 참조)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파견된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그러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였다면 그리스도께서 파견하셔서 그 안에 현존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임금에게 파견된 암행어사가 임금의 이름으로 임금의 권한을 행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권한을 주시며 교회를 파견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2-23)

 

이는 교회의 반석인 베드로에게 주신 ‘하느님 나라 열쇠’의 권한이 있어서 가능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8,18)

 

따라서 “베드로에게 주어진 매고 푸는 저 임무는 그 단장과 결합되어 있는 사도단에게도 부여되었음이 분명합니다.”(1444) 이 때문에 “교회와 이루는 화해와 하느님과 이루는 화해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1445) 교회를 받아들이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면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마태 10,40 참조)

 

개신교인들은 사제가 죄를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스스로 그리스도의 죄의 용서 권한을 행사할 수 없기에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파견된 공동체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 내 그리스도의 이름은 곧 그리스도의 현존을 뜻합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9월 19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