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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137: 고해성사 4(1450~1460항)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1-10-04 조회수1,111 추천수0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37. 고해성사 ④ (「가톨릭 교회 교리서」 1450~1460항)


고해성사에서 ‘무릎 꿇음’과 ‘죄 고백’ 행위의 중요성

 

 

신앙인들은 고해성사를 생각하면 보통 부끄러운 잘못을 사제 앞에서 상세히 고백해야 하는 두려움을 떠올립니다. 죄는 숨기고 싶은 게 본성인데 한 인간 앞에서 자신의 수치스러운 부분을 드러내는 것은 어렵고 두려운 게 당연합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내 죄를 다 알고 계시는데 굳이 상세하게 다 밝힐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고해성사는 크게 ‘통회’(1451~1454), ‘고백’(1455~1458), ‘보속’(1459~1460)으로 나뉩니다. 이 중에서도 죄의 고백이 가장 핵심입니다. 따라서 “사는 게 죄지요”라는 식의 모호한 고백은 통회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요, 올바른 보속을 받을 수도 없게 만듭니다.

 

요즘 우리는 코로나 시대에 ‘공동 고해’라는 형식의 고해성사 방법도 접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해 방법은 위급한 상황에서는 꼭 필요하기는 하나, 개별 고백의 의미를 퇴색시킬 위험성도 있습니다. 자칫 전화나 SNS로 고해하면 안 되냐는 말까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굳이 사제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하고 하느님께서 다 아시는 죄를 왜 상세하게 고백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죄는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하와도 하느님처럼 된다는 뱀의 꼬임에 빠져 죄를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교만과 반대 방향인 ‘겸손’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은 진실을 가리게 합니다. 거짓말을 하게 합니다. 진실이 밝혀져 자신의 부끄러움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그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 무화과 잎으로 ‘두렁이’를 만들어 몸을 가렸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은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타나셨을 때 그들은 하느님 앞에 설 용기가 없었습니다.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 그때 죄를 고백할 용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하느님은 그들을 위해 준비한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가죽옷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부끄러움을 가려주기 위해 준비하신 것입니다. 가죽옷을 준비하고 서 계시는 하느님 앞에서 여전히 자신이 만든 두렁이를 걷어내기를 두려워한다면 가죽옷을 입을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말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무화과 잎으로 만들어 나를 가리던 그 거짓의 잎사귀들을 먼저 뜯어내야 합니다. 부끄러운 맨살을 드러냈을 때 가죽옷을 받을 준비가 된 것입니다.

 

얼마 전 뉴스에서 중고로 산 김치냉장고 안에 현금다발이 1억 원 넘게 들어있어서 신고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냉장고의 판매자는 그 냉장고를 판 사람을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그 돈이 깨끗한 돈이었다면 주인이 반드시 나타났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주인이라고 밝히면 그 돈이 어떻게 생긴 것이고 왜 김치냉장고에 보관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추궁이 들어갈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이때 대답할 수 있다면 그 돈을 되돌려 받는 것이고 아니면 그냥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무리 죄의 용서를 위해 가죽옷을 준비하셔도 내가 죄를 인정하고 고백할 용기가 없다면 그것을 입을 자격을 잃습니다. 입고서도 쫓겨납니다. 주실 수 없습니다. 내가 만든 두렁이는 내가 뜯어내야 합니다.

 

제가 이탈리아에 있을 때 ‘체나콜로’라는 공동체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3년을 넘게 사는 페데리코라는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는 음악을 하다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 노숙 생활까지 했습니다. 어머니의 강요로 체나콜로에 들어온 것입니다.

 

체나콜로 공동체는 그러한 사람들이 들어와 중독을 끊게 만듭니다. 하지만 페데리코는 3개월만 버티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미사 때도 팔짱을 끼고 절대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가는 날을 며칠 남기고 그도 천천히 무릎을 꿇어보았습니다.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는 그때 느낀 ‘평화’ 때문에 3년이 넘었는데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겸손하게 자기 죄를 인정하고 고백함은 교만에서 벗어나 죄의 용서를 받을 준비가 되었음을 드러냅니다. 성당에서 장궤틀이 사라지고 고해성사의 이런 전통들도 간소화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전례는 죄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을 위해 겸손함을 표현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가톨릭신문, 2021년 10월 3일, 전삼용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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