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139. 복음과 사회교리 - 인간과 제도를 완성하는 것은 하느님의 가르침과 실천(「간추린 사회교리」 565항)
신앙인의 삶, 세상 속 촛불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정치 참여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봉사 의무의 한 표현으로서, 이는 가치 있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섬김의 정신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선의 추구, 빈곤과 고통 상황에 특별히 주목하면서 이루어지는 정의의 발전, 지상 실재들의 자율성 존중, 보조성의 원칙, 연대를 통한 대화와 평화 증진은 정치 활동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 기준들이다.”(「간추린 사회교리」 565항) 어리석은 자에게는 매우 높은 자리가 주어지고(코헬 10,6) 가을입니다. 들판의 황금빛 곡식을 보며 결실에 기뻐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낙엽을 바라보며 삶의 무상함도 떠올립니다. 향긋한 차와 잠시의 고독은 삶에 대해 묻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 와중에 사회는 언제나 복잡해 보입니다. 대선을 불과 5개월 남기고 각종 의혹이 넘쳐 나는 정치판을 비롯해서 종식에 대한 희망과 한계까지 내몰린 이웃들의 절박함이 동시에 묻어 나는 코로나19 상황, 그 밖의 여러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정치판은 점입가경입니다.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정치의 본질은 결국 죽기 아니면 살기의 싸움에 불과함을 각인시키는 가운데 시대착오와 독선, 무능과 아집도 모자라 이제는 누가 누가 더 나쁜가를 따지는 차마 꼴보기 힘든 한편의 막장을 찍고 있습니다. 소설 ‘페스트’를 통해 카뮈는 언제고 끔찍한 역병이 되풀이될 것이라 예언했는데, 정치판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추태가 되풀이되고 협력과 연대는 요원하니 과연 우리에게 무엇이 위안이 될 수 있을까를 자조할 따름입니다.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진 것을 모두 팔아”(마르 10,18) 하지만 세상에 어떤 사람이, 어떤 집단이나 제도가 완전하겠습니까? 그래서 「간추린 사회교리」에는 정치활동이 봉사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으나 매우 어려운 일이며 (565항), 정치와 제도의 불완전함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엄격한 틀을 강요한 적이 없다고 설명합니다.(568항) 또한 「간추린 사회교리」에는 어떤 실재의 ‘완전함’을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등장하는데 그 완전함이 실현되기 위한 조건은 바로 신앙의 가르침과 연관되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 사회제도 등은 그 자체로 결코 완벽할 수 없고, 하느님 말씀의 실천이 완전함을 완성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회교리는 현실이 복음의 내용에 부합하는지 해석하는 식별의 도구이나 그것은 결코 이데올로기의 영역이 아니라 신학의 영역에 속함을 명시합니다.(72항) 나아가 인간이나 사회의 한계와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상호 협력과 존중’, ‘도덕적 가치와 복음정신’을 추구해야 하며(569항) 올바른 양심으로 대처할 것을 권고합니다.(570항)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아름다운 계절에 좋은 글, 따스한 말씀을 드리고 싶으나, 본고가 사회교리를 다루는 코너인지라 부득이 사회에 대한 소견을 드림을 양해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침을 논하기 위해서 사회에 대한 냉정한 진단도 필요합니다. 오늘날 현대사회가 갖는 여러 문제는 경쟁지상주의와 성공지상주의 정도로 압축되며 이는 신앙과 도덕적 가르침에 점점 둔감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회교리를 공부하고, 좀 더 나은 사회를 염원하며 노력하는 데에 하느님 은총과 도우심도 필요하지만 우리 노력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내 주변 상황이 진흙탕인 것과 내 양심이 깨끗한 것이 별개일 수 있으며,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는 신앙인의 삶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작은 촛불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책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먼 시골, 작은 병원에서 치매 어르신들을 돌보며 겪은 저자의 체험, 그 속에서 피어난 애틋함과 따스함을 기록한 책인데 참으로 훈훈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훈훈한 이야기, 미담이 되는 일들도 있으니, 결국 그것이 세상과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고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섭리인가 싶습니다. 도움받는 일에 어색해하는 할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어르신과 제가 그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 제가 아직 어렸을 때 어르신께서 그 힘든 시절을 견뎌 주셔서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미안하다는 생각은 마세요. 이제 젊은 우리가 어르신들을 보살펴 드릴 차례니까요. 제가 더 늙어서 병이 들면 또 다른 젊은이가 저를 지켜 줄 테죠. 그래야 세상이 유지될 게 아니겠어요?” 할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럴 때는 무조건 손을 잡아야 한다. 체온은 말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낼 때가 많다는 것을 나는 경험으로만 안다.(고재욱 「당신이 꽃같이 돌아오면 좋겠다」 중) [가톨릭신문, 2021년 10월 17일, 이주형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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