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61. 참행복(「가톨릭 교회 교리서」 1716~1729항)
하느님은 참행복을 주시는 유일한 분 사람은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 할까요? 교리서는 행복이 “인간 본성의 갈망”(1718)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전하실 때, “행복하여라!”로 시작하십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세상에 이타적인 행복은 없다고 말합니다. 행복은 단순한 쾌락의 감정이기에 행복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인해 무수한 범죄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살 의욕도 사라집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이란 영화에 죽고만 싶은 젊은 윤수와 유정, 두 남녀가 나옵니다. 윤수는 사형수입니다. 그는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는 폭력을, 어머니로부터는 버림받았습니다. 유일한 혈육인 동생은 죽었고, 사랑하는 여자에게 배신당했습니다. 세상에서 더는 행복을 기대할 수 없었던 윤수는 살인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빨리 죽기만을 바랍니다. 유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열네 살 때 사촌 오빠에게 성폭행당했는데 엄마는 딸의 따귀를 때리며 창피하다고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상처로 유정도 모두가 다 미워서 자주 자살을 시도합니다. 유정은 이모 모니카 수녀님의 소개로 사형수 윤수와 만납니다. 서로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다가 동질감을 느끼고 사랑의 감정까지 싹틉니다. 사형장으로 가기 직전의 윤수는 유정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죽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사는 게 지옥 같았는데…. 내…. 살고 싶어졌습니다.” 유정도 윤수를 살릴 수만 있다면 자신에게 피해를 준 모든 사람을 용서하겠다고 말합니다. 솔직해져야 합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사는 것이지만, 살기 위해서라도 행복해져야 합니다. 더 큰 행복을 추구하다 보면, 행복이 단순한 쾌락적 감정이 아닌 타인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행복이어야 함을 알게 됩니다. 쾌락은 사실 행복의 적입니다.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마약을 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좋아하던 ‘치즈버거의 맛’을 느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가진 마약을 모두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잘못된 행복은 더 크고 완전한 행복의 맛으로만 끊을 수 있습니다. 별로 행복해지고 싶지 않다고, 혹은 지금 매우 행복하다고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아직 우리는 완전한 행복에 다다르지 않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적당히 행복하다 믿었다면 하늘의 별을 올려다볼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는 참 행복의 경지까지는 다다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믿읍시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을 당신께 이끌기 위해 그 마음 안에 그(행복에 대한) 갈망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갈망을 채워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1718)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모든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의 출발점이 됩니다. [가톨릭신문, 2022년 3월 27일,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수원교구 죽산성지 전담 겸 영성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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