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가톨릭 신학 (14) 부활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교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 계시, 신학 등이 많은데, 그중 ‘부활’은 가장 어려운 주제 중 하나입니다. 부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증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제자들의 ‘증언’입니다. 부활의 첫 증인인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해, 사도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루카 23장), 티베리아스 호숫가(요한 21장) 등 많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가던 중 다마스커스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깊게 체험했던 사도 바오로(사도 9장) 역시 중요한 증인입니다. 부활의 두 번째 증거는 ‘빈 무덤’입니다. 당연히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이 부활의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없지만, 부활하셨다면 무덤은 비었어야만 합니다. 그저 빈 무덤이 부활의 증거는 아니지만, 무덤이 비었어야 부활을 상상할 수 있기에 부활의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활 사건과 관련해 신앙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활은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살아생전 당신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신 후 그분이 부활하셨을 거라 기대나 예측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후 모두가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요한 20,1)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 무덤으로 찾아갔습니다. 예수님 시신이 사라진 것을 확인했고, 제자들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제자들이 빈 무덤을 확인한 후 다시 돌아갔는데, 마리아는 계속 무덤 근처에 머물렀습니다. 무덤 밖에 서서 울던 마리아 뒤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는데, 그녀는 예수님이신 줄 몰랐지요. 아마도 부활하신 육신은 다른 얼굴과 몸, 다른 음성이나 모습인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잠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못 알아보다가 어느 순간, 즉 예수님께서 평소 그녀를 부르셨던 것처럼 “마리아야!”하고 부르셨을 때 예수님이심을 알아봅니다. 마리아는 왜 어두운 새벽에 예수님 무덤에 갔고, 왜 무덤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왜 ‘마리아야!’라고 불렀을 때 예수님을 알아봤을까요?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랑’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사람이었기에, 죽음 이후에도 예수님 곁에 머물렀습니다. 마리아 역시 예수님을 많이 사랑했기에, 그분의 외모와 음성은 달라졌지만 평소 그녀를 부르시던 모습을 기억하였고, 부활하신 분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부활은 하느님 사랑의 힘이고, 사랑은 부활을 알아보는 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부활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듯 보여도 사랑하는 사람은 믿을 수 있고, 희망할 수 있습니다. 믿음, 희망, 사랑은 항상 함께하는데, 그중에 제일이 사랑이라 하는 이유는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가장 깊은 신비도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있다면 믿고 희망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콜로 3,14) [2022년 4월 24일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서울주보 4면,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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