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8) 성경 속 수의 의미 ②
4는 자연 · 5는 율법 · 6은 부정을 의미 ‘넷’ 곧 ‘4’는 자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온 세상’ 삼라만상을 상징한다.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에덴동산을 묘사하면서 “강 하나가 에덴에서 흘러나와 동산을 적시고 그곳에서 갈라져 네 줄기를 이루었다. 첫째 강의 이름은 피손인데, 금이 나는 하윌라 온 땅을 돌아 흘렀다. 그 땅의 금은 질이 좋았으며, 그 고장에는 브델리움 향료와 마노 보석도 있었다.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 에티오피아 온 땅을 돌아 흘렸다.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흘렀다. 그리고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라고 소개한다.(창세 2,10-14) 에제키엘 1장 4-14절과 요한 묵시록 4장 6절에는 하늘의 하느님 어좌 둘레에 사자와 황소, 사람, 독수리 같은 네 생물이 엎드려 하느님을 경배하고 있다고 한다. 교회는 이 묵시록의 네 생물은 온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네 복음서를 각각 상징하고 있다고 한다. 마태오 복음서(또는 복음서 저자)의 상징은 ‘인간’ 또는 ‘인간의 얼굴’이다. 마태오 복음서가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임을 말하는 족보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마르코 복음서의 상징은 ‘사자’이다. 마르코 복음서가 요한 세례자가 광야에서 외치는 설교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광야의 왕인 사자가 그 표징이 된 것이다. 루카 복음서의 상징은 ‘황소’이다. 사제인 즈카르야가 지성소에 들어가 향을 피우는 장면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에 성전 제단에 바쳐지는 번제물인 황소가 그 표징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요한 복음서의 상징은 ‘독수리’이다.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라고 시작하는데 마치 독수리가 하늘 높이 날듯이 복음서 내용이 처음부터 드높은 하늘의 하느님 곁에까지 우리를 데리고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렇듯 네 복음서는 온 세상 구원의 거룩한 표징이다. 또 4는 흙과 물, 불과 바람 등 자연을 구성하는 네 원소를 가리킨다. 아울러 4는 야훼(YHWH) 하느님의 이름을 구성하는 글자의 수이다. ‘다섯’ 곧 ‘5’는 ‘율법’과 관련된 수이다. 하느님께서는 시나이 산에서 돌로 된 2개의 증언판에 당신 손가락으로 직접 적으신 십계명을 모세에게 주셨다. 증언판에는 각 5개의 계명이 새겨졌다. 십계명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고 당신께서 직접 선포하신 하느님의 법이다. 십계명은 이집트 탈출 사건에 비추어 이해해야 한다. 십계명은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삶의 조건을 나타내는 생명의 법이다. 십계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사랑의 율법’으로 완성된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온 마음과 목숨, 정성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르 12,29-31) 예수님의 이 말씀을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풀이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8-10)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친교 제물을 바칠 때 숫양 다섯 마리, 숫염소 다섯 마리, 1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를 바쳤다.(민수 7,17. 22. 29 참조) 또 구약 성경 가운데 가장 중요한 토라 곧 모세 오경이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5권으로 구성돼 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이셨다.(마르 6,38-42) 또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 신랑을 맞을 준비를 잘한 5명의 슬기로운 처녀와 그렇지 못한 5명의 어리석은 처녀의 비유를 들어, 또 다섯 탈렌트의 비유로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셨다. ‘여섯’ 곧 ‘6’은 성경에서 긍정적인 뜻보다 부정적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 수이다. 완성을 의미하는 ‘7’에서 하나 모자라는 6은 무언가 부족하고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은 7을 기준으로 시간 계산을 했다. 6일 동안 이어지던 하느님의 창조 사업이 일곱째 날 완성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6일간 노동하고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냈다. 요한 묵시록에는 그리스도인의 적을 일컫는 ‘반(反) 그리스도’ 권력자 이름을 ‘666’으로 풀이했다.(13,18 참조) 나쁜 수인 6을 666이라고 세 차례나 겹쳐 놓음으로써 가장 악한 적그리스도를 표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영원한 생명을 얻는 심판의 기준의 기준이 될 자비의 행위를 여섯 가지 제시하셨다.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주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고, 병들었을 때에 돌봐주고,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준 것이 바로 그 기준이다.(마태 25,35-40 참조)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7월 3일, 리길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