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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176: 죄의 경중(1854~1864항)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7-12 조회수1,226 추천수0

[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176. 죄의 경중(「가톨릭 교회 교리서」 1854~1864항)


고해성사해야 할 죄와 고해할 필요 없는 죄의 구분

 

 

죄는 그것의 무겁고 가벼움에 따라 ‘대죄와 소죄’로 구분됩니다. 교회는 대죄를 ‘죽을죄’(peccatum mortale)로 표현합니다. 대죄는 몸에 아주 심각한 암 덩어리가 있어서 의사에게 수술받지 않으면 당연히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상태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 수술을 교회에서 고해성사를 통해 받습니다. 반면 ‘소죄’(peccatum veniale)는 작은 종양이나 상처처럼 약을 먹거나 발라주면 저절로 낫는 병입니다. 이런 죄는 고해성사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미사 때 “내 탓이요!”만 제대로 해도 용서가 됩니다.

 

하지만 소죄를 무시했다가는 곧 대죄에 빠지게 됩니다. 댐에 작은 구멍이 났다면 그것을 바로 때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방치하면 결국엔 댐이 허물어집니다. 소죄는 지어도 괜찮은 죄가 아니라, 대죄에 빠질 위험에 있다는 경고로 여겨야 합니다.

 

고해성사에서는 대죄만 고백하면 됩니다. 문제는 내가 대죄를 지었는지 소죄를 지었는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우선 교회가 제시하는 대죄의 조건은 세 가지입니다. 곧 ①중대한 문제 ②완전한 인식 ③전적인 동의입니다.(1857-1859 참조)

 

사실 차 한 대를 훔치는 것과 돈 1000원 훔치는 죄의 경중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중대한 문제’입니다. 특별히 ‘과음’ 같은 경우는 대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자기 몸을 스스로 망가뜨리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무면허 운전을 했다고 합시다. 이것도 대죄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아빠 차를 몰고 햄버거를 사러 왔다면 어떨까요? 그 아이는 아직 무면허 운전에 대한 온전한 인식을 할 수 없는 나이입니다. 오히려 차 열쇠를 아무 데나 놓아둔 부모에게 죄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완전한 인식’입니다. 범죄를 저질러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지으면 대죄가 소죄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이 죄인지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았던 고의적인 무지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죄가 되려면 ‘의식적으로 동의’해야 합니다. 어떤 범죄자가 자녀를 잡아놓고 그 부모에게 대죄가 되는 일을 시켰다면, 상황에 따라 그 부모에게는 그것이 죄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일미사에 빠지는 것은 어떨까요? 십계명을 어겼으니 ①중대한 문제를 어긴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야 하는 것을 알았으니 ②완전한 인식도 성립합니다.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주말에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③전적인 동의에는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대죄라고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때는 ‘반복성’이란 새로운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 여행을 가기 위해 이번엔 내가 의도치 않게 주일미사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면 이것은 의도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은 죄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대죄에 들어섰다는 뜻입니다. 후회스러운 일이 있어서 자기 손으로 자기 머리를 한 번 쥐어박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의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지은 죄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습니다. 나아지면 됩니다. 한 번에 걷는 아기는 없습니다. 수천 번 넘어집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넘어진 숫자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에 기뻐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죄를 대하시는 방식도 그렇습니다.

 

[가톨릭신문, 2022년 7월 10일,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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