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영상교리] (13) 미사 ① 미사의 의미
미사 통해 예수님 구원 은총 재현 서울 남대문시장 4번 출입구 옆 한 건물. 이곳에 입점해 있는 곳은 남대문시장 가게가 아니라 바로 ‘남대문시장성당’입니다. 남대문시장에서 일하는 분들을 위해 상가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데요. 곧이어 시작될 토요일 저녁 주일 미사를 앞두고 조금씩 분주해지고 있습니다. 그럼 이 시각 남대문시장성당 신자 상인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네~ 당연히 삶의 현장에서 일하고 계시는데요. 미사 시간을 앞둬서인지 조금씩 일을 정리하는 분위기입니다. 드디어 출발! 옷을 갈아입고 좁은 판매대를 넘어 발걸음을 총총히 옮깁니다. 미사가 무엇이길래 이분들은 이렇게 일손을 멈추고 한달음으로 성당으로 향하는 걸까요? 미사 시간 20분 전, 삼삼오오 성당을 찾는 신자 상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핍니다. 일할 때 수시로 만나야 하는 스트레스 대신 언제나 ‘어서 오라’고, ‘와서 쉬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드디어 미사 시작! 남대문시장본당 신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묵상하고, 함께 찬양하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당신의 살과 피는, 또 말씀은 이곳 신자들의 몸과 피와 영혼을 살찌우는 생명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미사는 무엇인가 미사! 여러분에게 미사는 무엇입니까? 미사가 무엇이길래 우리는 매주 주일 미사를 드리러 가는 걸까요? 미사는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치신 것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 또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5)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당신 자신을 바치심으로써 최후의 만찬에서 하신 이 말씀을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미사는 바로 이를 기념하고 재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사는 단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만을 기념하는 제사가 아닙니다. 미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함께 기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예수님의 그 모든 삶이 죽음에 이르기까지 진정으로 참되고 의미 있음을 보증해 준 사건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미사 때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죽음을 전하며 부활을 선포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어린 양의 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듯이, 새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들 역시 새 계약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새 생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는 미사 성제를 통해서 이 구원의 위대한 사건을 새롭게 재현합니다. 미사를 통해서 우리는 이토록 놀라운 구원의 은총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미사를 감사제라고 부릅니다. 나아가 미사 때에 우리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살아 계시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영적 양식으로 받아먹고 마십니다. 이것은 미사가 제사만이 아니라 잔치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잔치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눠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일치를 이룹니다. 또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생명의 양식으로 우리에게 내어주셨듯이 우리 또한 우리의 삶을 이웃과 나눌 것을 새기고 다짐합니다. 따라서 미사는 우리가 미사를 드릴 때마다 인류 구원의 가장 위대한 사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파스카 사건이 재현되는 것입니다. 미사!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주실 구원의 잔과 빵을 들고 삶에 지치고, 타인에 지치고, 자신에게 지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위로와 격려의 손짓으로, 자비와 사랑의 눈빛으로. 그래서 미사는 그리스도인의 힘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얻는 기쁨과 행복의 원천입니다. ▶ 가톨릭 영상교리 보기 https://youtu.be/vp35jg0ETMQ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7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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