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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 해설: 공동선 = 하느님의 뜻 = 사랑과 용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08-03 조회수1,293 추천수0

[이주형 신부의 사회교리 해설] 공동선 = 하느님의 뜻 = 사랑과 용서

 

 

알아보기 – 험한 세상에서 나의 희망은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1921년 임학천 선생님이 작곡하고 많은 가수들이 노래해서 유행한 대중가요 ‘희망가’의 첫 소절입니다. 험난한 세상살이에서 참 희망을 숙고하게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희망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희망 없이 살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을 겁니다. 누구나 희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느님과 신앙도 희망의 원천이며 소중한 나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도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이루고픈 일들과 꿈도 희망이 됩니다.

 

그런데 가끔 하느님을 잊고 세상 것에만 집착하며 살기도 합니다. “세상살이는 어쩔 수 없어! 남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 라며 위안을 삼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신앙을 통해 희망을 찾아야 합니다.

 

 

심화하기 – 신앙의 가르침인 사랑과 용서

 

더 많은 소유와 경쟁과 승리를 노래하는 세상에서 천주교 신앙은 나누고 내어주고 양보하고 용서하라고 가르칩니다. 주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해야하고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뺨마저 대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신앙의 가르침을 완벽하게 실천함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며 살기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나약하고 두려운 나머지 세상과 타협하며 신앙의 가르침을 느슨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고해성사를 볼 때면 이를 소홀히 한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랑과 용서라는 그 가르침을 행해야만 합니까? 그 이유는 사랑과 용서야말로 하느님께서 초대하시는 삶의 길이자 알려주시는 삶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선은 바로 그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삶을 살고 얻은 결실이 바로 공동선입니다.

 

 

사회교리의 가르침 – 하느님의 뜻인 사랑과 용서를 실천함이 공동선

 

사회교리의 원리 중 하나가 바로 공동선의 원리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소수가 아닌 다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그 총합을 뜻할까요? 아니면 돈이나 재화를 많이 벌어들이는 것이 공동선일까요?

 

공동선은 개인과 사회가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실행하고 얻은 열매의 총합입니다.(간추린사회교리 164-165항) 아무리 많은 사람을 위한다 해도 목적이 선하지 않으면 공동선이 아닙니다. 돈과 재화를 많이 벌어도 번영을 구가해도 거기에 도덕·윤리·신앙과 그 열매인 인권·생명·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역시 공동선이 될 수 없습니다. 사회가 아무리 풍요로워도 하느님의 뜻, 사랑과 용서가 없으면 공동선이 없는 상태입니다.

 

즉 개인과 사회의 모든 활동들이 하느님의 뜻을 지향하는 가운데 얻은 모든 결실이 바로 공동선입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하느님 가르침인 사랑과 용서를 삶의 방법이자 목적으로 여기는 태도가 바로 신앙인의 모습이며, 그런 삶을 통해 얻는 모든 결실이 바로 공동선인 것입니다.

 

- 서울 새남터성당, “파리 외방 전교회 선교사들의 십자가”

 

 

세상과 사회 안에서, 개인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열매와 결실은

참으로 많습니다.

돈과 명예, 권력과 권위, 장수와 건강

세상의 행복과 평화도 얻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하느님이 없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께서는

당신에게 이롭던 것들을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겼다고 하지요?(필리피 3,7-8)

왜입니까? 하느님만이 참되시고

그분만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레지오의 가르침 – “성모님께 봉사할 때는 온 힘을 다해야 한다!”

 

“성모님은 레지오의 자녀들이 당신이 간직하고 계신 무진장한 은총의 보화를 마음껏 꺼내 가기를 바라시면서 단원들에게 간절히 호소하고 계신다.”(제5장 ‘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 중 4항 참조)

 

그 옛날 가브리엘 천사의 잉태 예고를 들은 가난한 마을의 어린 소녀이셨던 성모님은 공동선을 가장 명확하게 실천하셨습니다. 폭력과 불의함이 가득하던 세상에서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모님은 하느님을 신뢰하며 구세주를 오게 하셨고 자신을 봉헌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실은 모든 이가 구원을 받는 최고의 결실, 가장 이상적인 공동선의 실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레지오 단원 여러분, 하느님의 뜻은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지혜를 초월하고 그분께는 불가능이 없으심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부족하고 미약하지만, 그분의 도우심으로 하느님의 뜻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질 것입니다. 다만 믿음과 용기를 갖도록 합시다!

 

레지오 단원은 오로지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모자란 점을 보충하고 순화하며 완덕을 위해 노력하고 인간 본성을 거룩하게 변화시킴으로써 미약한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위대한 힘이 된다. 이 힘은 결국 송두리째 산을 들어내어 바다를 메우고, 온 땅을 평탄하게 고르며, 굽은 길을 바르게 펴서 곧장 하느님 나라에 이어지도록 한다.(제5장 ‘성모님께 대한 레지오 단원의 의무’ 중 4항 참조)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8월호, 이주형 세례자 요한 신부(서울대교구 성서 못자리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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