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의 거룩한 표징들] (16) 십자성호
십자성호, 삼위일체 하느님께 신앙 고백하는 표지 - 십자성호는 가톨릭 신앙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이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모상 앞에서 십자성호를 그으며 기도하고 있다. [CNS]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며 오른손으로 몸에 십자가를 긋는 행위는 그리스도교 신앙과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는 가장 공적인 표지이다. 그래서 이름도 ‘십자성호’(十字聖號)라 하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바치는 기도를 ‘성호경’(聖號經)이라 한다. 십자성호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짧지만 가장 중요한 기도이다. 십자성호는 공허한 손짓이 아니라 교회의 보호자이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하느님의 신비에 참여하는 기도이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일상의 크고 작은 일을 시작할 때와 마무리할 때 반드시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호경을 정성스럽게 바칠 것을 권고한다. 십자성호는 ‘작은 십자성호’와 ‘큰 십자성호’로 구분된다. 작은 십자성호는 이마와 입술, 가슴에 작은 십자 표시를 하는 것이다. 큰 십자성호는 왼손을 가슴에 댄 채 오른손을 편 상태로 이마와 가슴,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어깨로 십자 모양의 성호를 크게 긋는다.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이마에서 “성부와”, 가슴에서 “성자와”, 왼쪽 어깨에서 “성”, 오른쪽 어깨에서 “령의”, 두 손으로 모으면서 “이름으로. 아멘”하고 성호경을 외운다. 오른손은 하느님 오른편에 계신 ‘그리스도’를, 이마는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근원이신 ‘아버지 하느님’을, 가슴은 인간으로 강생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왼쪽은 ‘죽음과 어둠’을, 오른쪽은 ‘빛과 진리’, ‘생명과 영광’을 상징한다. 그래서 십자성호는 참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강생하시어 십자가 수난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어 아버지 하느님 오른편에서 앉아계시며 마지막 날 영광의 임금으로 재림하실 것이라는 가톨릭 신앙의 모두를 담고 있다. 아울러 십자성호는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라는 희망을 드러낸다. 십자성호의 의미를 좀더 살펴보면 먼저 십자성호는 주님의 강생과 수난, 부활과 승천을 기억하는 구원의 표지이다. 아울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긋는 십자성호는 삼위일체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표지이다. 또 십자성호는 하느님 자비의 표지이다. 우리 자신을 열어 하느님의 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주님의 은총에 협력하도록 한다. 십자성호는 매일 매 순간 바치는 기도로 하루를 거룩하게 한다. 십자성호는 우리의 몸과 영혼, 마음과 정신을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 온전히 맡기는 행위이다. 그리고 십자성호는 우리의 기도와 일을 하느님께 집중시킨다. 일의 시작과 끝에 바치는 십자성호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요한 14,13)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십자성호는 우리 자신을 늘 새롭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하느님을 증거한다. 또 십자성호는 우리를 악으로부터 보호하고 세례성사 때 받은 성령의 인호를 드러낸다. 십자성호는 초세기 사도 시대 때부터 이어진 오랜 전통이자 준성사이다. 곧 일곱 성사에 준하는 거룩한 표징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교회는 십자가를 죽음의 형구가 아닌 구원의 표징으로 새롭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교회는 2세기부터 십자성호를 그리스도인의 표지로 사용했다. 먼저 세례받은 이의 이마에 십자 표시를 하는 등 전례 예식에 도입됐고, 신자들이 개인 기도를 할 때나 서로 신원을 확인할 때 오른손 엄지로 이마나 가슴 등에 작은 십자를 긋는 것이 유행했다. 이것이 십자성호의 시작이다. 4세기 성부ㆍ성자ㆍ성령의 동일한 위격을 부인한 아리우스파가 등장하자 교회는 이를 이단으로 단죄하고 ‘성부와 성자, 성령께서는 동일한 본질을 갖는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다’라고 정통 신앙을 선포했다. 이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하는 거룩한 신앙의 표징으로 이마와 가슴, 양어깨에 연결해 크게 십자가를 긋는 ‘큰 십자성호’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7~8세기 교회 안에 ‘단성론자’가 등장했다. 이들은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될 수 없다며 예수님은 하느님의 본성 곧 신성만 지니신 분이라고 주장했다. 교회는 이들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시다”라고 선포했다. 이 시기 그리스도인들은 십자성호를 그을 때 엄지와 검지, 중지를 모으고, 약지와 새끼손가락을 안으로 접어서 크게 십자성호를 긋기 시작했다. 세 손가락을 모은 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두 손가락을 접은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했다. 중세 시대가 끝날 무렵인 13세기 말까지 동ㆍ서방 교회 구분 없이 십자성호를 이마에서 가슴,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어깨로 그었다. 13세기 말부터 가톨릭교회는 동방 정교회와 달리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어깨로 긋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오른손을 펴서 십자성호를 긋는 것은 중세 말 무렵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처음 한 것으로 이후 가톨릭교회 전체에 확산됐다. [가톨릭평화신문, 2022년 9월 4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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