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가톨릭 신학 (32) 교회의 어머니, 시온의 딸 1 가톨릭교회에서 성모 마리아는 신학적으로 중요한가요, 아니면 신앙적으로 중요한가요? 정답은 ‘둘 다!’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합니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마리아 역시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이해하는데 중대한 역할을 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은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신학의 기준입니다. 총 4개의 헌장, 9개의 선언, 3개의 교령으로 구성되고, 가장 중요한 문헌은 4개의 ‘헌장’(Constitutio)입니다. 「전례헌장」, 「교회헌장」, 「계시헌장」, 「사목헌장」 등이고, 이 중 「교회헌장」과 「계시헌장」은 ‘교의헌장’, 즉 계시를 직접 다루고 해석하는 문헌입니다. 「교회헌장」은 총 8개 장(章 Caput)으로 구성되는데, 마리아론은 가장 마지막 장인 제8장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8장의 제목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 계시는 천주의 성모 복되신 동정 마리아’이고, 가톨릭교회 마리아론의 주제와 위상과 방향이 함축적으로 제시됩니다. 우선 가톨릭교회 마리아론은 두 가지 범주, 즉 그리스도론과 교회론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원칙이 제시됩니다. 마리아론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 안에서 고찰되어야 하고, 동시에 그리스도론과 교회론 역시 마리아론을 통해 분명히 조망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교회와 마리아의 관계가 강조됩니다. 「교회헌장」은 마리아에게 다양한 명칭을 부여하는데, 대표적으로 ‘교회의 어머니’(Mater Ecclesiae)입니다. 밀라노의 주교였던 성 암브로시오가 처음 사용했다고 알려진 이 호칭은 독일 신학자 칼 라너의 형인 후고 라너에 의해 의미가 재발견되었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이끌었던 교황 바오로 6세가 공식으로 헌정한 명칭입니다. 마리아가 신앙과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 출산, 양육하였고, 한평생 그리스도와 일치하는 삶을 살았기에, 마리아를 교회의 원형이자 모범이며 교회의 어머니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마리아에 대한 또 다른 대표적 명칭이 ‘시온의 딸’입니다. ‘시온’(Sion, Zion)은 다윗이 여부스인들에게 빼앗은 예루살렘 성으로(2사무 5,6-7), 예루살렘의 동쪽 산마루, 성전의 남쪽에 위치합니다. 솔로몬은 그 북쪽에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계약의 궤’를 모셨습니다.(1열왕 6장) 구약 시대에 ‘계약의 궤’는 하느님의 현존 자체를 상징합니다. 그 궤 안에는 모세의 십계명 돌판, 만나가 든 금 항아리,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 있다고 하는데(탈출 25,21; 민수 17,25; 히브 9,4), ‘계약의 궤’를 모시는 천막을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이 마련하였고, 나중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합니다. 이후 ‘시온’은 예루살렘에 있는 ‘하느님의 성스러운 산’을 의미하였고(시편 2,6),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였으며(이사 1,27), 은유적으로 천상 도시를 뜻하기도 합니다.(히브 12,22; 묵시 14,1) 결국 ‘시온’은 예루살렘 전체를 가리키거나(즈카 8,2-3; 미카 3,12-4,2), 예루살렘의 중심인 성전이 있는 자리 혹은 성전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 장소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최후의 만찬과 성령 강림이 이루어진 곳이고, 제자들이 성모님과 함께 머물렀던 곳입니다. [2022년 10월 2일(다해)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서울주보 4면,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가톨릭 신학 (33) 교회의 어머니, 시온의 딸 2 시온 혹은 시온의 딸이라는 이름은 원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 즉 하느님의 선택을 받고,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구약의 하느님 백성을 가리킵니다. 동시에 ‘시온의 딸’은 새로운 하느님 백성의 탄생을 암시합니다. 즉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유배에서 돌아온 ‘남은 자들’과 같은 선택받은 의인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에게서 새로운 하느님 백성이 나오리라 기대합니다. 구약에서 ‘남은 자들’은 하느님에 의해 선택된 자들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시온의 딸’은 하느님에 의해 선택받은 자이고,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자이며, 하느님의 공동 협력자를 지칭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는 마리아를 ‘시온의 딸’로 이해하고 연관시켰습니다. 이에 근거해서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마리아를 ‘참된 이스라엘’, ‘시온의 딸’로 부르게 되었고, 이 내용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적용되어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이 된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하느님 백성’입니다. 이 교회는 동정녀 마리아의 잉태를 통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하느님의 어머니가 보여주신 신앙적 순종의 “예!”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구원의 주도권은 언제나 하느님께 맡겨진 것이지만,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는 인간의 자유로운 동의, “예!”(Fiat)가 요구됩니다. 마리아의 신앙과 순종이 구세주의 강생을 가능하게 했기에, 마리아의 신앙적 순종은 교회의 모습이고 방향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구약성경에서 구원론적 의미를 지닌 표현인 동정녀, 어머니, 시온의 딸 등의 호칭을 마리아에게 수여하고 부르고 있습니다. 교회의 가장 깊은 신비 역시 그리스도와 마리아의 관계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교회란 무엇인가(본질), 교회는 무엇하는 곳인가(사명)에 대한 대답을 초기 그리스도교는 마리아의 동정성과 모성에서 찾았습니다. 마리아는 신앙을 통해 그리스도를 품었고,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 신앙과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를 품습니다. 마리아가 그리스도를 낳은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을 낳습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오직 예수님을 바라보고 따른 것처럼, 교회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야 합니다.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고 기른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을 낳고 기릅니다. 이처럼 교회의 본질과 사명은 오직 그리스도만을 추종하는 동정녀이자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모습에서 해답을 찾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몸에 품고, 함께하고, 따르는 마리아의 모습이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범이고 원형이며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성모님의 모습 안에서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핵심을 발견하고, 성모님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를 향한 마리아의 삶이 “탁월하고도 독특하게”(「교회헌장」 63항) 교회보다 앞서서 존재했고, 교회가 근본적으로 지녀야 하는 어머니로서 또는 동정녀로서의 모습을 모범적으로 보여준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교회는 지금 그분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며, 마리아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잘 보여줍니다. [2022년 10월 9일(다해) 연중 제28주일 서울주보 4면,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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