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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 안 상징 읽기: 미덕과 악덕을 상징하는 동물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2-10-06 조회수1,302 추천수0

[교회 안 상징 읽기] 미덕과 악덕을 상징하는 동물들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들 가운데서 유익하고 재미있다고 손꼽히는 프로그램 한 가지는 동물에 관한 것이다. 간접적으로 영상을 통해서 보더라도, 사람들의 눈에는 우주가 사뭇 경이로워 보이고, 그 우주 안에 거처하는 온갖 동물들 또한 놀랍고 신기하며 흥미로워 보이는 것이다. 이 점은 예전의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이교 사회의 사람들은 봄과 가을, 영광, 번식과 같은 것들을 사물로써 상징되는 인격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렇게 상징화한 인격체의 본질이 사물에 실제로 내재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온갖 사물들을 신으로 섬기려는 경향이 생겨났다. 그리고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의 모든 국면이 창조주이신 하느님을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중세기 동물우화집의 가르침

 

그리스도교의 사고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창조주, 곧 한 분이시며 진리이신 하느님을 반영한다고 이해한다. 그런데 이 이해는 피조물 자체가 가지는 어떤 내재성 때문에 그렇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초월성에 대한 성찰과 인식을 통해 그렇다고 알아듣는 것이다. 이렇듯 확고한 사고방식에 힘입어 중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동물과 식물 그리고 그 밖의 창조된 모든 것이 하느님의 특정한 측면을 상징할 수 있다고, 이로써 창조주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12, 13세기에 삽화를 곁들인 동물우화집들이 나와서 인기를 끌며 널리 읽혔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비록 동물에 매료된 첫 시대는 아니지만, 개와 고양이에게 전용 식당이며 목욕 시설을 제공하고 반려동물을 잃은 주인의 슬픔을 달래주기 위해 심리 치료까지 제공하는 최초의 시대다. 그에 비해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동물이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질서와 아름다움을 반영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데 주안점을 두고 동물을 대했다. 이는 동물의 세계에 대한 중세기의 개념이 오늘날과는 많이 다르지만, 그러면서도 어느 면에서는 건강한 면이 있었음을 말해 준다고 하겠다.

 

 

미덕을 상징하는 동물들

 

12세기에 널리 읽히던 동물우화집으로 ‘피시올로구스(Physiologus)’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멧비둘기(암수가 사이좋기로 유명한 야생 비둘기) 암컷은 자기 짝을 몹시 사랑하여 신의와 정절을 지키며 그 수컷과 평생을 함께 산다. 그런데 어쩌다가 수컷이 매나 사냥꾼에게 잡혀서 없어지기라도 하면, 홀로 남은 암컷은 다른 수컷과 다시금 짝을 지어 살려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늘 잃어버린 짝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면서 기다리고, 죽을 때까지 참고 견딘다.”

 

이어서 암컷 비둘기의 행동에 대한 도덕적 해설이 뒤따른다. “그러므로 믿는 모든 이의 영혼은 이 작은 새에게서 볼 수 있는 정덕이 얼마나 고결한지를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마음가짐이 멧비둘기를 닮은 사람에 대해 전해 들은 신자들은 모두 그 사람의 정덕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배우자가 되시는 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셨고 하늘에 오르신 것을 본 뒤로, 다시금 다른 배우자를 찾지 않고 죽을 때까지 사랑과 자선을 실천하는 가운데 참고 견디며 첫 배우자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거룩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멧비둘기뿐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본받아야 할 덕목들을 상징하게 되었다. 개는 자기 주인에 대한 한결같은 충성심으로 칭송되었고, 마침내는 무덤에 조성된 조형물들의 대열에 개를 조각한 형상들이 배치되기에 이르렀다. 서양에서 오늘날에도 개의 이름으로 흔히 쓰이는 ‘피도(Fido)’는 라틴어로 ‘신뢰하다’라는 뜻이 있는 단어에서 유래한다.

 

그런가 하면 사자는 자는 동안에도 눈을 뜨고 있다고 당시 사람들은 생각했는데, 그러기에 밤을 지새우며 경계하고 필요하면 전투도 마다하지 않는 가톨릭 신자의 정신을 상징하게 되었다. 또한 사자는 근시여서 멀리 있는 큰 먹잇감만 볼 수 있고 발아래에 있는 쥐나 토끼 같은 작은 동물들은 보지 못한다고 여겨졌으며, 그리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기꺼이 큰 모험을 감수하며 도모하는 그리스도인을 상징하게 되었다.

 

 

악덕을 상징하는 동물들

 

그런가 하면 사람이 반드시 피해야 하는 악덕을 상징하는, 그다지 훌륭해 보이지 않는 동물들에 대한 해설도 있다. 동물우화집은 햇살 아래서 오래 견디지 못하는 양서류 동물인 개구리가 절제할 줄 모르는 남자들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리고 올빼미는 밤의 피조물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는 동물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기에 차츰 비의적인 학문이나 비밀결사단체를 상징하는 새로 여겨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 원숭이는 결코 잘난 편이 아니기도 한데다가 ‘시작은 있지만 끝(곧, 꼬리)은 없는’ 외모를 지녔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악마의 인격을 상징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시선이 늘 땅을 향하도록 창조된 돼지는 항상 땅의 일 또는 사물에 집중하는 사람을 나타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한편, 16세기 사람으로 개신교 이단에 단호하게 맞서 교회 수호에 앞장섰던 교회 학자 성 프란치스코 드 살은 사람들이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 중세기의 전통을 따르면서 자연으로 눈길을 돌렸다. 성인은 저서와 강론을 통해 끊임없이 동물과 자연에 대해 말했다. 이를테면, 날아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늘 눈을 덮어 가리는 매는 정결을 소중히 여겨 함부로 아무것이나 보는 일이 없도록 눈길을 삼가 조심하려고 애쓰며 훈련하는 남자를 연상케 한다고 해설했다. 또한 거미는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거미줄을 치는 까닭에 교만을 상징하게 되었는바, 그리스도인은 거미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선행이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숨기듯이 꿀벌은 보이지 않는 벌집 안에다 꿀을 모으기에 겸손한 영혼을 상징하게 되었으니, 꿀벌은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1세기에 이르러 과학적 정보와 실제 사실에 입각한 지식이 엄청나게 쌓임으로써 인간은 창조된 우주의 기능적 측면에 대해서도 아주 많이 알게 되었다. 인기리에 방영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은 동물이 자연에서 어떻게 살고 번식하고 행동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그러다 보니 한편으로는 자연주의적 경향과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무지가 뒤섞여서 혼란스러워진 면이 있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얻게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된 우주에 대한 궁극적인 의미를 보는 눈길은 잃어버리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피조물들을 더욱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찾음으로써 그분을 더 잘 알게 되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임을 우리에게 일러주시는 분은 지혜의 근원이시고 지혜 자체이신 하느님이시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0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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