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 상징 읽기] 어느 작은 짐승의 흰색 모피에 담긴 뜻 - ‘동방박사의 경배’ 무리요 작 해마다 대림 시기가 오면 그리스도인들은 설렘과 기쁨으로 성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교회나 단체, 그리고 신자 가정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 세우고 성탄 구유를 설치한다. 한편, 개인으로는 성탄 카드를 주고받으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함께 축하하고 기뻐한다. 성탄절은 여전히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하고 기리는 교회의 대축일이다. 그러면서도 오늘날의 세태에 비추어보자면, 현세적이고 상업적인 장삿속에 의해 온 세상이 본래의 의미와는 상관없이 떠들썩하게 지내는 세계의 세시풍속의 하루가 된 듯도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많은, 그리고 오래된 그리스도인들의 기억과 정서에는 성탄절 하면 으레 떠오르는 몇몇 정겨운 장면들이 있을 것이다. 그중의 하나, 성탄 구유 세트나 성탄 카드에서 보았던, 그래서 친숙한 장면을 떠올려 본다. 마구간에 세 분의 성가족이 계신다. 갈색 펠트 천으로 만든 겉옷을 입고 그 위에 양가죽 망토를 걸치신 성 요셉, 파란색 새틴으로 만든 가운을 입고 무늬를 넣어 짠 빨간색 천으로 만든 망토를 두르신 성모 마리아, 황금색으로 반짝이고 그 테두리는 은색으로 장식된 가운 차림의 아기 예수님이다. 그리고 그 앞에는 고개를 숙이거나 무릎을 꿇어서 경배하는 동방박사들이 있고, 그 뒤로는 아기 예수님께 드릴 예물을 실은 낙타들이 보인다. 17세기 에스파냐 출신의 화가 무리요(B. E. Murillo)가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라는 그림에서는 동방박사가 무릎을 꿇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동방박사의 옷차림을 보면, 화려한 외투를 입고 그 위에 검은색 반점 무늬가 찍힌 흰색 모피 망토를 걸쳤다. 그리고 아마도 왕의 가운처럼 보이는 이 외투의 테두리는 흰색 모피로 마무리되어 있다. 동방박사는 왕 또는 지혜로운 사람[賢者]로도 알려져 있었기에, 중세기의 그림들에서는 그 옷차림 또한 대개는 왕의 복식인 빨간색 비단옷을 입은 모습으로 표현되었다(여기에 소개하는 그림에서는 이 외투의 색이 다소 바랜 것으로 보인다). - 북방족제비의 모피로 마감한 외투 흰 털을 더럽히는 것보다 죽음을 선택하는 북방족제비 이 외투에 사용된 흰색 모피는 어떤 짐승의 것일까. 북방족제비라는 작은 동물의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세기 이래로 이 흰색 모피는 의미 깊은 상징성이 담긴 것으로 여겨져 왔다.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북방족제비의 털 색깔이 계절에 따라 바뀌는 현상을 눈여겨보았다. 여름에는 몸의 위쪽(등 부분)은 갈색이고 아래쪽(배 부분)은 흰색이던 것이 겨울이 되면 꼬리 끝의 검은색 작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온통 흰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중세기의 화가들은 이 현상을 보고 북방족제비의 모피에는 동방박사들을 위에서 말한 옷차림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주 적절하다고 할 정도로 풍부한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 시기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차츰 북방족제비의 흰색 모피에는 다중의 상징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당신의 폭포 소리에 따라 너울이 너울을 부릅니다”라는 시편 42,8의 말씀처럼, 북방족제비의 모피는 하나의 상징성 위에 또 하나의 상징성을 가진다고, 그래서 하나의 심오한 의미가 또 하나의 더욱 심오한 의미를 연달아 불러온다고 이해하게 된 것이다. 중세기의 동물우화집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북방족제비의 귀중한 모피를 찾는 사냥꾼은 이 작은 동물이 서식하는 굴의 입구에 진흙을 발라 놓은 다음에 이 동물을 쫓기 시작한다고 한다. 사냥꾼과 개들의 끈질긴 추격에 지치고 힘이 빠진 북방족제비는 어렵사리 도망쳐서 자기 굴에 도착한다. 그런데 막상 굴에 도착하면 그 입구가 진흙으로 더러워져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러면 북방족제비는 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자기 몸에 지저분한 진흙을 묻혀서 흰 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자신을 뒤쫓는 사냥꾼과 개들에게 몸을 맡긴다고 한다. - 북방족제비의 여름(좌), 겨울 모습 또는 사냥꾼이 북방족제비를 발견하면 그 주변을 포위하듯 에워싸는 구덩이를 파고는 진흙으로 채우거나 해서 그 안에 가둔다고 한다. 그러면 북방족제비는 도망치려고 애를 쓰다가 털에 흙을 묻히지 않고서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사냥꾼에게 자기 몸을 맡긴다고 한다. 진흙 구덩이에 빠지거나 갇힌 북방족제비는 깨끗하고 아름다운 흰색 털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살기를 포기하고 목숨을 버리는 쪽을 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북방족제비의 생태를 두고, 중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더러운 것보다는 죽음을, 불명예보다는 죽음을 선택한다’는 표현으로 압축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기도 해 북방족제비는 이처럼 순수한 흰색의 모피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특성 때문에 도덕적 정결, 순수, 고결을 상징하게 되었다. 북방족제비의 이러한 상징성은 무엇보다도 먼저 온갖 존재들 가운데서도 가장 정결하시고 순수하시며 고결하신 아기 그리스도님과 관련된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상징성이 뒤따른다. 앞에서 말했듯이, 북방족제비의 털은 여름에는 갈색이다가 겨울에는 흰색으로 변한다. 그러기에 어찌 보면 이 동물은 여름에는 죽었다가 겨울에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북방족제비는 또한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하기도 한다. - 북방족제비의 문양으로 만들어진 문장 더 나아가, 북방족제비의 상징성은 주님의 탄생 이전에도, 그리고 그 도중에도, 또 그 뒤로도 동정이신 성모님에게서 볼 수 있는 정결, 순수, 고결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북방족제비의 상징성은 다른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덕목들인 용기, 고결, 덕성, 신앙 그리고 은총을 그리스도인들에 앞서 먼저 갖추고 지녔던 동방박사들과도 관련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북방족제비의 상징성은 왕적 신분을 가진 그리스도인들, 예컨대 왕족, 귀족, 고위층 인사들에게까지 연장된다. 그리하여 북방족제비의 꼬리 끝 검은 점을 표현한 모피 문양은 그들이 수행하는 공공의 직무며 활동과 관련해서 그에 걸맞은 동기, 지침, 행동, 가르침들에 요청되는 용기, 정의, 품위를 명심하고 각성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그들이 착용하는 외투와 망토에 부착하는 표장이 되었다. 기사들 또한 그들의 문장을 만들 때 흰 바탕에 검은 점들이 새겨진 도안을 도입했는데, 이는 바로 북방족제비의 꼬리 끝 검은색 반점을 반영한 것이다. 기사들의 이러한 선택은 기사로서 명예와 양심을 더럽히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북방족제비의 이러한 상징성들이 가지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한다면,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해마다 성탄절에 오시는 아기 그리스도님의 순수, 성모님의 정결, 그리고 기사의 용기를 본받겠노라는 각오를 다짐해 봄직할 것이다. 그리고 자기 몸이 더럽혀지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북방족제비와 같은 단호함과 결연함으로 죄를 지어 영혼의 정결과 순수와 고결을 손상하느니 차라리 죄에 대해 죽을 다짐과 의지를 굳게 가져 봄직도 할 것이다. 나아가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의 명성이 더럽혀지거나 교회의 가르침이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애써 봄직도 할 것이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2년 12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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