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이 뭡미꺼?] “신학이 뭡미꺼?” 흔히 신학이라고 하면 전문학자나 사목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신학은 딱딱하고 지겨운 학문적 이야기로 오해할 수 있지만, 신학은 하느님과 그분의 섭리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자신의 신앙에 대해 책임을 지며, 이해와 공감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길잡이입니다. 어쭙잖게 아는 것이지만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신학’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신학이 뭡미꺼?” 우리 신자들에게 “신학이 뭘까예?”라고 물어보면, 공통된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제 눈을 피하거나, 다른 하나는 옆 사람을 처다보는 것입니다. 많은 신자분들은 ‘신앙’, ‘믿음’이나 ‘성경’ 그리고 ‘교리’에 대해서는 익숙하시지만, ‘신학’이라고 하면 생소하시는지 입을 꾹 닫아 버립니다. ‘신학’의 한자를 보면 ‘하느님’(神)과 ‘배움’(學)의 합성어로, ‘하느님을 배운다’라는 뜻입니다. 또한 신학의 영어(theology) 단어는 어원적으로 ‘신(하느님)’을 뜻하는 희랍어(希臘語, 그리스어) 테오스(theos)와 ‘이야기, 전술, 담론, 설명’등을 뜻하는 로고스(Logos)의 합성어로, ‘신(하느님)의 이야기, 말씀’ 또는 ‘신(하느님)에 대한 진술, 담론’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곧 ‘하느님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 묻고 깨닫는 일련의 과정’이 신학이기에, 한마디로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로고스(Logos)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를 감안하여 좀 더 생각해보면, 깊이 성찰(省察)해 보고 고민하며, 단순히 나 혼자만이 알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 느끼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느끼고 말하는 하느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묻고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학은 더 이상 전문학자나 신학생, 신학자나 수도자만이 하는 것이 아닌, 믿음을 갖고 하느님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사람, 드러내지 않지만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뇌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신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학은 뭐 하는 것인가예? 신학은 내가 바로 여기 숨 쉬고 살고 있는 현실 세계, 곧 ‘지금, 여기서’ 내가 믿고 사는 신앙의 내용들을 나의 말, 나의 물음으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좀 더 설명드리자면,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을 왜 믿어야 하는지’, ‘또 그 내용들이 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어떻게 이러한 믿음을 내 삶에서 살아있는 진리로 만들 수 있는지’ 묻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학이 하는 일입니다. 신학은 그래서 한마디로 ‘생각하는 신앙’입니다. 따라서 신학은 내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고민해 보는 것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물음을 던지는 것이고, 곰곰이 되새기며 고민하면서, 동시에 내 이웃들의 생각을 듣고, 나의 삶에서 대답을 찾는 여정입니다. 그래서 신학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를 부르시는 하느님을 향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에만 간직하지 않고 스스로가 믿는 진리를 반성하며 비판하는 가운데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성숙하였습니다. 시대에 따라 다양한 도전에 맞서 정통 신앙을 지켜왔고, 지켜 나갈 것입니다. 이에 우리 신학은 그리스도교의 정통 신앙을 지키고 보호하고 전승(傳承)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이론과 사상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지만,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인류에게 내어주신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적당히 내가 원하는 정도로만 하느님을 알고, 믿음을 지키다 보면 더 많이 알고자 하는 필요를 못 느끼게 됩니다. 신학은 하느님을 알면 알수록 더 깊어지는 사랑을 일깨워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시간에는 신학을 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자세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2023년 1월 1일(가해)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세계 평화의 날) 가톨릭마산 8면, 변종원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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