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교리] 신앙에는 ‘물음’이 필요하다! 신자들의 영혼을 돌볼 사명이 맡겨진(허브 13,17 참조) 사목자로서 가장 큰 기쁨과 보람 중 하나는 예비자들이 입교해서, 일정한 시간과 과정 뒤에 세례식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 나는 일이다. 반대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은 세례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중 일부가 너무나 쉽고 빠르게 냉담교우로 이어지는 경우이다. 그런데 이점은 비단 새 신자만이 아니라 기존 신자에게도 똑같이 나타난다. 사실 믿음을 고백함으로써 이미 영원한 생명의 길에 들어섰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1코린 13,12) 불완전하게 깨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신앙 여정에서 때때로 영적 어려움과 위기에 처할 수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64 참조). 한 마디로, 세례를 통해 ‘파란불’에서 시작한 믿음 생활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신자, 곧 믿는 사람이다(가톨릭 성가 1번 제목과 라틴어 원문 사도신경의 첫 시작은 이렇게 동일하다: “나는 믿나이다”). 믿음이 흔들리고 변하고 약해질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결코 믿음을 잃지 않고,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다. 사실 우리의 믿음은 다 똑같을 수 없다. 성경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창세 12,4) 살아간 아브라함과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루카 1,38 참조)라고 고백한 마리아의 무조건적인 믿음만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따져봐야 인정할 수 있다는 토마스의 합리적인 믿음도 전해준다(요한 20,24-25 참조). 결국 ‘어떻게 믿었느냐’ 이전에, ‘믿음을 지켰느냐’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선종하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마지막 당부 역시 이것이었다. “믿음 안에 굳건히 머무르십시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믿음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을까? “신앙은 이해를 요구한다”라는 안셀모 성인의 말처럼, 신앙에는 ‘물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성경과 교회 가르침을 통해 믿음의 대상인 하느님과 믿음의 목적인 영원한 생명 등에 대해 배우고 이해한다. 다만 그렇다고 성경과 교회 가르침이 전해주는 문제에 대한 ‘해답’만을 그저 아무런 생각과 의식 없이 구구단을 외우는 것처럼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우리는 교회로부터 이미 전해받은 믿음의 내용을 성찰하며 물음을 던져 보아야 한다. 예컨대 ‘왜 하느님은 사람이 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나에게 누구인가’, ‘영원한 생명-구원이란 것은 무엇인가?’ 이는 지적인 앎의 성장 이전에, 내 믿음의 뿌리를 심는 일이자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통해 믿음의 끈을 이어나가는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나 혼자서 믿음을 지켜나갈 수 없다. 믿음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신앙 공동체와 믿음의 길을 이미 충실히 걸었던 성인 성녀들이 함께 동반한 것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주님께서 우리의 “믿음이 꺼지지 않도록”(루카 22,32) 기도해주고 계신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도, ‘주님께 매달려 떨어지지 않고’(집회 2,3 참조) 믿음의 마지막 길에 들어섰을 때 이렇게 고백해 보자!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6) [2023년 3월 12일(가해) 사순 제3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8면, 윤태종 토마스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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