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16] 대속 :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요?”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신”,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등등의 표현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이래 전례 안에서 듣고, 또 기도 중에 고백하는 내용입니다.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로마 5,9) 이런 내용은 성경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그럼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이 세상 안에서 하신 일이니, 하느님은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사용해서 최대한 ‘알아주기를’ 원하실 것 같습니다. 신학이 하는 일도 이것이고요. 그럼 이제 다음 질문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셨으니,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속죄하셨다는 말, 즉 ‘대속’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계속 있었습니다. 성 안셀모, 성 토마스 아퀴나스도 그러셨고, 현대에도 이 노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인간인 우리가 이해하려고 할 때, 사람들의 의식도 문화도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각 시대와 문화마다 저마다의 노력을 계속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물론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에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톨릭교회가 한 가지 분명하게 가르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은 우리를 ‘대리하는 속죄’이지만,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대체’하는 것은 아닙니다. A가 B를 대체할 경우, B는 더 이상 권리가 없지만, 대리할 경우에는 B의 자유와 권리가 보존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리하셔서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하느님과의 화해,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품위를 얻어 주셨는데, 그 품위에 맞게 생활할 우리의 의무와 권리, 자유를 보존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우리가 어떻게 살든 상관없이 예수님이 ‘다 알아서 책임지시고 구원하신다’는 생각은 예수님의 대속을 ‘대리’가 아닌 ‘대체’로 알아들은 것이지요. 이런 태도를 사도 바오로는 강하게 꾸짖으십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우롱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는 법입니다.”(갈라 6,7) 성경은 곳곳에서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에 부합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성도들에게 걸맞게, 여러분 사이에서는 불륜이나 온갖 더러움이나 탐욕은 입에 올리는 일조차 없어야 합니다.”(에페 5,3) 그리스도인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1베드 2,9)으로서 그에 걸맞은 처신을 하면서 살도록 요청받습니다.(1베드 2,9-12 참조) [2023년 6월 11일(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서울주보 4면, 최현순 데레사(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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