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18]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1) :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부활을 믿으시나요? 솔직하게 답해도 된다고 하면, 어떤 답들이 나올까요?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니 못하실 일이 없지!’, ‘성경에 나오니 믿지.’, 혹은 ‘믿고 싶어요.’라는 응답도 있겠네요. 또 ‘부활이 있든 없든 뭐 그리 중요한가? 예수님 말씀대로 살면 되지.’, 또는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나?’ 하실 수도 있고, ‘임사체험’ 같은 걸로 이해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어쨌든 스스로 질문해 보는 것은 부활에 대한 신앙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 확신에 찬 보도를 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었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도 함께 먹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갔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습니다.(마태 28,11-15 참조) 그러나 제자들의 부활 체험은 너무나 확실하고 생생해서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확실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활 체험 이후의 변화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비로소’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그때까지 유다인들이 생각했던 정치적 메시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그리스도이심을 알아듣게 되지요. 지배하는 왕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구원하는 메시아, 그렇다고 무력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과 같은 분,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임을 알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으로 제자들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은 부활 체험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무엇이 그분의 제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위해 투신하게 한 걸까요? ‘부활하셨다.’는 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를 직역하면 ‘일으켜졌다’(마르 16,6; 루카 24,34; 요한 21,14 참조)입니다. 즉 ‘하느님에 의해서 일으켜졌다’는 것인데, 이 표현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으키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이 생명의 주님, 생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신앙의 중요 내용 중 하나입니다. “야훼는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분, 저승에 내리기도 올리기도 하신다.”(1사무 2,6) 신약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이 하느님의 업적임을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 3,15)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곧 삶과 죽음 모두를 관장하시는 분, 따라서 ‘모든 것이 끝장난 거기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분’임을 계시하는 사건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대로 부활을 믿는 사람은 미소를 잃지 않습니다. 모두가 다 ‘끝나버렸어.’ 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도 우리는 미소 지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서 생명의 하느님께서 일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모든 희망을 넘는 희망입니다. 우리는 “희망이 없어도 희망”합니다.(로마 4,18) [2023년 6월 25일(가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서울주보 4면, 최현순 데레사(서강대학교 전인교육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