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주일 특집] 교황(敎皇)인가 교종(敎宗)인가?
군주적 이미지 벗어나고자 ‘교종’ 혼용하지만 적확한 표현은 아직 - 성목요일에 이탈리아 팔리아노 교도소를 찾아 수형자의 발을 씻어준 뒤 발에 입을 맞추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CNS 자료사진 7월 2일은 교황 주일이다. 한국교회는 매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이나 이날과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가톨릭교회의 으뜸 지도자를 교황(敎皇), 바로 ‘교회의 황제’로 부를까? 최근 들어서는 황제라는 말이 갖는 부정적 의미를 피하기 위해 교종(敎宗)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교황 주일을 맞아 ‘교황’의 호칭과, 교황과 교종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본다. 교황을 부르는 다양한 호칭 가톨릭교회의 최고 목자인 교황은 여러 호칭으로 불린다. 「교황청 연감」에는 로마의 주교(Bishop of Rome),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 of Jesus Christ), 사도들의 으뜸 후계자(Successor of the Prince of the Apostles), 보편교회의 최고 대사제(Supreme Pontiff of the Universal Church), 이탈리아 교회의 수석 주교(Primate of Italy), 로마관구의 관구장 대주교(Archbishop and Metropolitan of the Roman Province), 바티칸시국의 원수(Sovereign of the Vatican City State),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ant of the servants of God), 이렇게 8개의 공식 호칭이 열거돼 있다. 영어로 교황을 가리키는 ‘Pope’라는 명칭의 원어 ‘파파’(Papa)는 아버지라는 뜻의 ‘파파스’(papas)에서 유래했다. 본래는 지역 교회 최고 장상을 부르던 말이었지만, 8세기 이후부터 로마의 주교에게만 사용되다, 그레고리오 7세 교황(1073~1085) 때부터 교황을 부르는 고유한 말로 정착했다. 그렇다면 동양 문화권에서는 ‘Pope’를 어떻게 쓰고 있을까? 우리나라와 일본은 정부와 교회 모두 교황(敎皇)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본은 오랫동안 법왕(法王)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다가 198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일본 사목방문을 계기로 일본교회가 ‘교황’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2019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으로 일본 정부도 ‘교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만과 홍콩은 정부와 교회 모두 교종(敎宗)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중국의 경우 정부는 교황을 공식 용어로 사용하고, 중국교회의 경우 대개 교종이라고 부른다. - 1967년 4월 23일자 ‘가톨릭시보’ 1면 알림에는 전국주교회의 공용어심의위원회로부터 ‘POPE’를 ‘교종’에서 ‘교황’으로 호칭하기로 했다는 통보를 받고 본지도 ‘교황’으로 쓰기로 했다는 내용이 게재됐다. 교황 vs 교종 한국교회에서는 처음에는 ‘교화황’(敎化皇), ‘교황’과 ‘교종’을 혼용해 오다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에 ‘교황’으로 통일해 쓰고 있다. 이는 ‘가톨릭신문’ 과거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가톨릭시보’는 1967년 4월 23일 1면 알림을 통해 “그동안 ‘가톨릭시보’는 ‘POPE’를 ‘교종’으로 번역, 호칭해 왔으나, 4월 8일 전국주교회의 공용어심의위원회(현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로부터 동 위원회가 이를 ‘교황’으로 번역, 호칭키로 했다는 통보를 받고 앞으로 본지도 ‘교황’으로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제 식민 지배의 영향으로 ‘교황’이라는 말이 생겨났기에, 신앙의 봉사자가 아닌 봉건군주적인 이미지를 지닌 ‘교황’이라는 용어 대신에 ‘교종’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됐다. 고(故) 정진석 추기경도 청주교구장 시절인 1983년 주교회의 회보에 “교회의 황제라는 뜻이 담긴 ‘교황’은 성서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전혀 잘못된 표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주교회의 천주교용어위원회에서도 이 문제를 계속 논의했고, 1991년 10월 11일 “‘교황’이라는 말이 틀리거나 나쁜 이미지를 지닌 용어가 아닐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는 물론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용어를 무리하게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종’(宗)이라는 한자 또한 황제들의 이름에 붙이는 군주적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어 주교회의는 이듬해 춘계 정기총회에서 “교황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고 결정했다. 「천주교 용어집」에서도 2000년 발행된 초판에는 “‘교종’은 쓰지 않는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2014년 개정판을 내면서 ‘교종’이라는 용어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당시 개정판을 낸 천주교용어위원회의 위원장은 강우일(베드로) 주교였다. 이렇듯 가톨릭교회의 최고 목자를 교황으로 부를 것인지 교종으로 부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이 논란에 불이 붙은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 선출 이후, 당시 주교회의 의장이기도 했던 강 주교였다. 강 주교는 2013년 3월 21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에서 교황 즉위 경축미사를 주례하고 강론을 하며 교황을 ‘교종’(敎宗)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강 주교는 강론에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택하신 그분의 복음적 영성을 드러내는 데 임금이나 황제를 뜻하는 교황(敎皇)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제주교구만 대외적으로 ‘교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 일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들도 개인의 성향에 따라 교황 대신 교종이라고 부른다. 제주교구 선교사목위원회 위원장 황태종(요셉) 신부는 “라틴어로 교황을 말하는 ‘Pontifex’는 ‘다리를 놓는 사람’이라는 말로 교황은 ‘하늘과 땅을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분’”이었다며 “그 어디에도 황제라는 뜻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회의 우두머리’를 뜻하는 ‘교종’(敎宗)이라는 말이 맞다”고 강조했다. 황 신부는 “예전 예수회 선교사들이 중국 선교에 나서며 ‘교회의 황제’라는 의미로 ‘교황’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우리는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인간을 신격화하는 이 용어는 선교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교황을 표현하는 적확한 용어 찾는 노력 더해야 천주교용어위원회 총무 신우식(토마스) 신부는 “교황의 호칭 중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종’과 교종의 ‘종’은 다른 의미”라며, “교종(敎宗)의 ‘종’(宗)자도 황제를 뜻하는 마루 ‘종’자로 의미에는 아무 변화가 없는데, 교종이라고 쓰는 것은 신자들에게 혼란만 줄 뿐”이라고 밝혔다. 신 신부에 따르면, 한국교회 현직 주교들도 ‘교황’이라는 용어를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신 신부는 ‘교황’이 가톨릭교회를 이끄는 수장을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한다고 인정했다. 신 신부는 “교황의 칭호가 여러 가지인 이유”라며 “교황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용어를 찾기 위해 계속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본지 편집자문위원인 대구대교구 신평본당 주임 성용규(도미니코) 신부는 “지금 전 세계 교회는 시노드적인 교회를 위해 내달리고 있는데, 교황이라는 말은 시노달리타스 정신과는 맞지 않는다”면서 “지금이 바로 교황과 교종이라는 용어에 대한 논의를 하기 좋은 때로, 새로운 길로 가기 위해 혼란을 겪을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23년 7월 2일, 최용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