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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 안 상징 읽기: 교황권을 나타내는 상징물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8-05 조회수280 추천수0

[교회 안 상징 읽기] 교황권을 나타내는 상징물들

 

 

가톨릭교회의 특징들 중 하나는 ‘사도로부터 이어져 오는 교회’라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손수 제자 열둘을 뽑으시어 사도로 삼으시고, 이 사도들을 바탕으로 교회를 세우셨고, 이 교회는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과 더불어 오늘에 이르도록 하느님의 백성으로, 그분 목장 안의 양 떼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교회는 또한 그리스도께로부터 그분의 양들을 보살피도록 위임받은 으뜸 사도 베드로와 그 후계자인 교황과 함께 살아간다.

 

베드로는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로서 로마에 왔다가 순교했고,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자리는 가톨릭교회의 본산이 되었다. 그리하여 가진 바, 누릴 바가 없어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1코린 9,22)이 될 수 있었던 이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인 교황은 나름의 권위와 권한을 갖게 되었다. 어느 결엔가 그 권위와 권한이 교회뿐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도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러한 교황권을 나타내는 상징물 세 가지가 있다. 어부의 반지, 교황 삼층관, 그리고 세디아 게스타토리아(Sedia gestatoria)가 그것들이다.

 

- 프란치스코 교황(좌)과 레오13세 교황의 어부의 반지

 

 

어부의 반지

 

어부의 반지는 교황이 사용하는 반지 형태의 인장이다. 첫 교황 성 베드로가 어부 출신이라서 그 후계자인 역대 교황들이 사용하는 인장이 ‘어부의 반지’라 불리게 되었다. 이 반지의 인면(印面)에는 베드로가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낚는 모습과 해당 교황의 라틴어 이름을 새긴다. 이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마르 1,17)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되새기고자 하는 뜻의 표현이다.

 

각 교황에게는 자신의 반지가 있다. 콘클라베에서 선출된 신임 교황이 새로운 이름을 선택하면, 그 이름을 새긴 반지를 새로 만들어 즉위 미사 때 새 교황의 오른쪽 약지에 끼워 준다. 어부의 반지는 인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 만큼, 교황의 공식 문서에 날인하는 용도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런가 하면 교황을 알현하는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어부의 반지에 입을 맞춤으로써 교황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반지의 시효는 교황 재임 중에만 유지된다. 교황이 사망하면 어부의 반지에는 십자 모양으로 깊은 흠집이 만들어지고, 이로써 그 효력이 소멸된다. 이는 사망과 더불어 그 교황의 직무가 소멸되었음을 나타내고, 또한 신임 교황이 선출되기 전까지 사망한 교황의 이름으로 문서가 날인, 위조되는 일이 없도록 막는 조처다.

 

전임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도 애초에는 어부의 반지의 효력 또한 함께 말소되는 것으로 정해졌다. 그런데 후임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임 교황의 반지와 같은 디자인에 이름만 다르게 새긴 반지를 사용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금으로 만든 이전 어부의 반지들과는 다르게 금으로 도금한 은반지를 사용한다.

 

- 각종 보석으로 장식된 교황 삼층관

 

 

교황 삼층관

 

교황 삼층관은 교황이 머리에 쓰는 관(冠)이다. 대개는 은으로 만들고 금으로 도금한 38cm 정도 높이의 타원 모양이다. 삼층으로 이루어진 이 관은 보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되며, 그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있다. 교황이 쓰는 관이 처음부터 별도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8~9세기부터 일반 주교관과는 다른 교황관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교황권이 절정에 이른 13세기 말에 이르러 이층관이 만들어졌고 이내 삼층관이 만들어졌다. 아마도 세속 군주와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음을 나타내고자 하는 뜻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관이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데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대개는 교황의 세 가지 권한인 ‘통치권, 교도권, 사목권’을 뜻한다거나 또는 ‘(세상의 악에 맞서) 싸우는 교회, 정화하는 교회, 승리하는 교회’를 뜻한다고 풀이한다. 교황 삼층관이라 해서 교황이 늘 이것을 쓰지는 않았다. 교황 즉위 미사나 대관식 같은 성대한 의식 때만 썼고, 전례 때는 대체로 삼층관과 모양이 비슷한 주교관을 썼다.

 

신임 교황은 대관식에서 이 관을 받아서 쓰게 되는데, 이때 수석 추기경은 이런 기도를 바친 다음 교황의 머리에 관을 씌워 준다. “세 왕관으로 장식된 관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그대가 군주와 왕들의 아버지, 세상의 영도자,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임을 아십시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모든 영예와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

 

- 삼층관을 사용하지 않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문장

 

 

그러나 교황 삼층관은 바오로 6세 교황 때부터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바오로 6세는 즉위식 때는 삼층관을 썼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는 쓰지 않았다. 그리고 후임인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은 교황 즉위식에서 삼층관 대신에 주교관을 썼다. 뒤를 이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역시 재임 중에 삼층관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두 교황의 문장에는 삼층관이 여전히 포함되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두 전임자의 선례를 따라 삼층관을 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문장에서도 삼층관이 있어야 할 자리에 삼층관처럼 생긴 주교관을 배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또한 문장에 삼층관 대신 주교관을 넣었다.

 

 

세디아 게스타토리아

 

세디아 게스타토리아는 직역하면 ‘태워 나르는 의자’라는 뜻으로, 교황이 성 베드로 대성당이나 라테라노 대성당 등에 입당할 때 타던 의전용 가마 의자다. 교황이 이것에 탄 채로 이동하는 것은 다른 성직자들이 하는 장엄 행렬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세디아 게스타토리아

 

 

세디아 게스타토리아는 몸체를 금박이나 금자수로 장식한 붉은색 벨벳으로 감싸고 팔걸이에는 금술을 늘어뜨려 장식한 의자인데, 아래쪽 기단부에 달린 고리들에 도금하거나 붉은 천을 씌운 긴 나무막대를 끼워 12명의 가마꾼이 어깨에 메고 이동한다. 목적지에 이르러 바닥에 내려놓고 막대를 빼면 그대로 의자가 된다.

 

이것은 신임 교황의 즉위식에도 사용되었는데, 이때 신임 교황이 의자에 앉으면 사제가 그 앞에서 린넨 조각을 3차례 연거푸 태우면서 비통한 어조로 “교황 성하, 세상의 영광은 이렇게 지나갑니다.”라는 말을 했다. ‘준주성범’에 나오는 이 구절을 말하는 뜻은 교황이라는 높고 화려한 지위에 오르더라도 인생은 덧없으며 사람은 죽으면 누구나 한 줌의 재로 돌아갈 것임을 상기시키며 겸손을 갖추도록 촉구한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1세 교황은 지나치게 권위적이라는 이유로 교황관과 더불어 세디아 게스타토리아의 사용을 거부하려 했으나, 군중이 교황을 더 잘 볼 수 있도록 하려면 이것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바티칸 관료들의 주장을 물리치지는 못했다. 그러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부터는 세디아 게스타토리아 대신 교황 전용차를 이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 시대의 교황들에게서 가진 바를 내려놓고 누리기를 마다하는 면모를 보며 살아간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8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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