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235. 복음과 사회교리(「간추린 사회교리」 527항)
낮은 곳에서 참된 목자의 사랑 전해야 -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 바친다. 사진은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전시돼 있는 전교회 소속 한국 순교 성인 10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앵베르 주교, 샤스탕 신부, 모방 신부, 베르뇌 주교, 볼리외 신부, 위앵 신부, 오메트르 신부, 다블뤼 주교, 유스토 신부, 도리 신부.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던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 가난이 제 탓만이 아닌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을 강조합니다. 소외된 사람, 불의에 짓밟히고도 호소할 데 없는 사람이 없어지고 그들도 인간다운 대접을 받게 될 때, 그들의 눈에서 눈물이 없어지고 누군가의 손길에 의해서 닦여질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가 됩니다.”(고(故) 김수환 추기경 「참으로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가장 낮은 곳에 전해진 복음 9월 순교자 성월입니다. 불과 230여 년 전 이 땅에 복음이 전해졌고 많은 신앙 선조들이 순교했습니다. 그중에는 노비, 백정, 기생, 광대, 상여꾼과 같은 천민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임에도 이름도 없이 마당쇠, 촉새년 등으로 불렸습니다. 노비들에게는 법 집행도 가혹했습니다. 17세기 이후 조선시대 노비들은 대부분 흉년, 생계 곤란이나 부채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노비가 됐다고 합니다. 천한 신분도 모자라 차가운 멸시와 어찌해도 바뀌지 않는 반상의 차별이라는 눈물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천주께서는 그대를 사랑하신다네’, ‘자네를 위해 예수님이 목숨을 바치셨다네’라는 선교사들의 복음 선포는 너무나 고마웠고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위로와 강한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버림받고 멸시받던 그분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습니다. 착한 목자와 삯꾼 심지어 먼 외국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온 파리외방전교회 성직자들이 이 땅의 하느님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1839년 기해박해와 1866년 병인박해에서만 앵베르·베르뇌·다블뤼 주교님, 샤스탕·모방·볼리외·위앵·오메트르·유스토·도리·프리티에·프티니콜라 신부님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과 사랑이신 하느님을 증거했습니다. 지도자와 위정자는 마땅히 그래야 함을 가톨릭 신앙은 강조합니다. 안타깝게도 역사에는 착한 목자보다 도둑이나 강도처럼 훔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삯꾼이 훨씬 많았습니다.(요한 10,10 참조) 백성은 굶든지, 아프고 죽든지 상관없이, 자신은 사치스럽게 살고 잘못된 이념에 빠져 무기 거래와 열병식, 전쟁과 독재를 일삼는 자들, 소통과 만남을 거부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며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이념만을 강요하는 자들입니다. 순교,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 물론 역사 속 왕들의 통치가 실패했다고 해서, 지혜롭게 다스리고 정의롭게 행동하는 왕의 이상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의 통치는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앙 때문에 순교하며 현실 안에서 괴로움과 눈물을 겪는 이웃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삶이 점점 메말라 가는 이웃들도 바로 옆에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낮은 곳에서 참된 목자의 사랑으로 자비와 사랑, 돌봄과 나눔을 요청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시노달리타스’(함께 가다)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삶의 자리에서 진리를 증언하라고 말씀하십니다.(「간추린 사회교리」 527항) 참된 순교는 물질의 유혹과 거짓에 맞서 하느님과 진리를 위하는 것이고 이웃과 사회에 대한 관심과 함께 하느님의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회 활동은 모든 인간 사회가 질서 정연하고 생산적인 것이 되게 하는 탁월한 덕목들, 곧 진리, 정의, 사랑, 자유를 제시하도록 자극한다.”(「간추린 사회교리」 527항) [가톨릭신문, 2023년 9월 24일, 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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