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상식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구원이 무엇인지? 구원받는다는 말의 의미는?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하는 루카복음을 보면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 2,11)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구원받는다는 말의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성경뿐만 아니라, 미사 중 신부님께서 읊는 기도문 안에서도 자주 반복됩니다. 가령,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기억나시죠? 그러나 흔하게 듣기는 하지만, 우리의 삶에서 구원이라는 말의 의미가 생생하게 살아나는 순간들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구원이 무슨 뜻인지 설명하려고 하니 어디서 읽었던 어느 신학자의 단상이 떠오릅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사실은 하느님을 찾는 각자 나름의 발버둥’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온전한 사랑이신 하느님께 충만하게 젖어들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있기에, 사람은 어떻게든 하느님을 찾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힘만으로는 하느님과 온전히 일치할 수 없습니다.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쇼핑 중독에 빠진 자매님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온 집안에 뜯지도 않은 택배 상자가 가득 차 있고, 거실에서 주방으로 이동하려면 쌓여있는 택배 상자 사이를 게걸음 하듯 요리조리 피해서 움직여야 하는 상황마저 되었는데도, 자매님은 인터넷으로 새로운 주문을 하기 바빴습니다. 남들보다 저렴하게 물건을 샀다는 묘한 만족감, 곧 새 물건이 온다는 설렘. 이런 감정들이 마음의 공허함을 잠깐이라도 채워주기에 쇼핑을 끊을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본인도 몰랐겠지만, 이 자매님이 찾고 있었던 것은 하느님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성 다블뤼 주교님)라고 고백할 수 있을 만큼 벅차오르도록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고팠던 것은 아닐지 싶습니다. 그러나 텅 빈 마음의 갈증이 폭풍처럼 휘몰아쳐 정신을 못 차리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하느님 대신 유사품인 쇼핑에 손이 갔을 뿐이었겠지요. 교회가 공적으로 설명하는 바도 이와 같습니다. 교회는 사람이 처음 창조될 때는, 하느님과 하나 되는 영원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은총을 받았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이러한 최초의 창조 상태를 상실하게 되었기에, 지금처럼 고통받으며 혼돈 속에서 살게 되었다는 것이죠. 온갖 종류의 스트레스와 고통, 불안 그리고 죽음을 향한 공포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사도 16,17 참조) 예수님의 사랑에 힘입어 다시금 태초의 창조 상태 지위를 회복하고 하느님과 일치하는 은총을 입는 것이 구원입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하느님 품에 안기시기 직전에 유언으로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죽음의 공포마저 뛰어넘을 만큼, 하느님과 일치하여 마음이 행복으로 벅차오르는 기쁨,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볼 수 있는 구원 아닐까요. 그래서 교회는 우리의 구원이 이 세상에서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시작되었다고 가르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23년 10월 22일(가해) 연중 제29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전교 주일) 서울주보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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