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쉬운 믿을교리 해설 - 아는 만큼 보인다] 240. 주님의 기도 ① (「가톨릭교회 교리서」 2759~2776항)
성경의 핵심 담긴 가장 완전한 기도 - 알레산드로 알로리 ‘물 위를 걷는 베드로’. 베드로가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청하듯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진정 하느님의 본성과 하나가 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의 저자 젠 브리커(Jen Bricker)는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딸아이를 버렸습니다. 그녀는 미국 일리노이주 작은 마을의 한 부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그녀의 양부모는 그녀와 세 아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도록 가르쳤습니다. 그 집에서는 단 하나의 규칙이 있었는데 “절대 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브리커는 어린 나이부터 야구, 농구, 체조 등 스포츠를 즐겼고, 마당에서 트램펄린을 타며 곡예 동작을 배웠습니다. 전문적인 텀블링을 습득한 그녀는 결국 일리노이주 텀블러 챔피언이 됩니다.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월드투어를 하며 30m 높이 실크 로프에 매달려 다양한 퍼포먼스 공연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현재 모습은 이전의 자신이 믿어온 자기 정체성의 결과입니다. 동물에게 키워져 자기를 동물이라 믿는 아이가 인간처럼 두 발로 걷고 인간 사회에 적응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 정체성을 주는 것이 부모의 살과 피입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여길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처럼,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라고 청했습니다. 요한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준 기도를 한다면 그 제자들은 요한의 수준만큼 회개하고 믿고 바라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는 유일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전해주신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2765)입니다. 결국 ‘무엇을 바라느냐’가 ‘내가 누구냐’라는 정체성을 결정합니다. 물 위를 걷는 베드로처럼 우리도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청할 수 있어야 진정 주님의 자녀답습니다. 성경에는 하느님 자녀가 바라야 하는 모든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경에 실려 있는 모든 청원을 살펴보십시오. 나는 여러분이 그 안에서 주님의 기도에 포함되어 있지 않거나 연유하지 않은 어떤 것을 발견하리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2762)라고 말합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도 “불과 몇 마디 안 되는 말들 속에 어쩌면 그렇게도 관상과 완덕이 다 들어있는지 나는 그저 놀랄 따름입니다. 마치 이것만 배우면 다른 책들은 소용이 없을 것만 같습니다”(「완덕의 길」 37,1)라고 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올바르게 바랄 수 있는 것을 모두 청할 뿐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청해야 할 순서대로 청하기도 합니다”(2763)라고 말합니다. 유의해야 할 것은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마치 물 위를 걷는 베드로처럼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주님의 기도를 한 번 바치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라신 것을 나도 바라고 행하기 위해 그 일곱 가지 청원에 온 마음으로 깊이 잠겨야 합니다. 그분의 바람과 나의 바람이 마음으로부터 일치할 때만 진정 하느님의 본성과 하나가 됩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청하듯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비로소 피조물이 창조자가 원할 수 있는 것을 원하게 되고 창조자의 본성 수준으로 살게 됩니다. [가톨릭신문, 2023년 11월 5일, 전삼용 노동자 요셉 신부(수원교구 조원동주교좌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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