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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교리: 사말교리 (4) 지옥 - 두려움의 문턱을 넘어 희망의 문으로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1-15 조회수150 추천수0

[생활교리] 사말교리 (4) 지옥 : 두려움의 문턱을 넘어 희망의 문으로

 

 

지옥(地獄), 곧 ‘땅 아래 감옥’이란 말마디에서 드러나듯 지옥은 종교를 떠나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적지 않은 이들이 지옥은 극심한 벌과 고통을 받는 하나의 끔찍한 ‘장소’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가톨릭교회는 지옥을 “공간적 차원”이 아니라 천국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 차원에서 이해”(『죽음 · 심판 · 지옥 · 천국』 52)를 시도한다. 곧 지옥은 ‘영원히’ 하느님과 헤어져 있겠다고 자유로이 선택하는 것이요,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 사랑을 ‘끝까지’ 스스로 거부한 상태를 말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3 참조). 이렇게 본다면 지옥의 상황은 결국 누가 초래하는 것인가? 원죄의 기원이 그러하듯 하느님이 아닌 인간 스스로의 최종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진 일이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인간이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비참한 상황에 처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당신 사랑으로 끊임없이 초대하신다. 다만 모든 초대는 일방적일 수 없다. 성경은 하느님께 돌아서기를 끝까지 거부하는 이들을 향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마태 13,42),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마태 25,41), “영원한 파멸의 형벌”(2테살 1,9) 등 비유적인 표현으로 지옥 벌에 대한 심판의 목소리를 전해준다. 그러나 지옥에 관한 성경의 진술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심어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 사랑 초대에 고집스럽게 불응하는 이들에게 다시금 응답하라는 강한 촉구이다.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지옥의 존재와 영원함을 가르치면서도, 지옥을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 안에서 바라본다. 왜, 하느님께서는 결코 그 누구도 지옥에 가도록 예정하거나 바라지 않으시기 때문이다(『교리서』 1035-1037 참조).

 

신학자 본회퍼는 신학에서 ‘어떻게’라는 물음에 앞서, ‘누가’라는 질문을 먼저 떠올리기를 권한다. 사실 ‘내가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란 물음에 집중하다 보면 우리에게 삶의 끝은 늘 두려움의 대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반면에 ‘나는 죽음 이후에 누구를 만나고, 또 누구에게 심판을 받는가’란 질문이 앞선다면 우리는 마지막 길에 있어 큰 위로와 위안을 받을 수 있다. 왜, 우리가 믿는 주님은 길 잃은 양을 애타게 찾아 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잃은 백성을 찾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착한 목자이고(마태 18,12-14 참조), 또 아들이 배은망덕한 짓을 하고 뛰쳐나갔어도 묵묵히 참고 기다려주는 아버지이며(루카 15,11-32 참조)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이를 우선적으로 사랑하시는 분(마태 20,1-16 참조)이시기 때문이다.

 

분명 최종적인 하느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면,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저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2코린 5,10)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히브 4,13) 드러나 그분 앞에서 셈을 해야 한다. 이 셈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하느님의 고유한 몫이니, 그분께 맡겨드리자. 다만 이때 두려움을 넘어 희망을 품자! 왜, 우리는 이미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요한 13,1)하신 하느님이 진정 ‘누구’이신지, 또 그러한 하느님에게 과연 우리가 ‘누구’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2023년 11월 12일(가해)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8면, 윤태종 토마스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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