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저들과 같아지려 하였지만…(2마카 4,16ㄴ) 기원전 333년경 이소스(현재 터키 지역) 전투에서,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마케도니아군은 다리우스 3세의 페르시아군을 무찌릅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알렉산더 대왕은 이집트와 페르시아 본토까지 정복하면서, 고대 근동 지방의 패권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스의 변방에서 시작된 마케도니아는 그리스 문화를 숭상했고, 자신들이 정복한 지역에 그리스 문화와 사고방식을 전파합니다. 당시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을 ̀Έλλην(헬렌)의 후손이라는 의미에서 Έλληνες(헬레네스)라고 불렀기 때문에, 그리스 문화가 확산되어 절정에 달했던 이 시기를 헬레니즘이라고 하지요. 이러한 시대의 변화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살아있던 때에는 헬레니즘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된 셀레우코스 왕조가 노골적으로 헬레니즘을 전파하였기 때문입니다. “임금은 아테네의 원로 한 사람을 보내어, 유다인들이 조상들의 법을 버리고 하느님의 법대로 살지 못하도록 강요하였다.”(2마카 6,1) 적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헬레니즘이라는 새로운 문화 앞에서 전통을 저버렸습니다. “이스라엘에서도 많은 이들이 임금의 종교를 좋아하여, 우상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1마카 1,43) 나아가 자신들이 따르던 율법과 전통을 멸시하고, “그리스인들이 영광스럽게 여기는 것을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2마카 4,15)하였습니다. 이렇게 자신들이 따라야 할 율법과 전통을 어기고, 이방 민족의 것들만 좋다고 따르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성경의 저자는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그들이 그리스인들의 생활 풍습을 열심히 따르고 모든 면에서 저들과 같아지려 하였지만,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적대시하고 억압”(2마카 4,16)하였다. 마카베오기가 전하는, 헬레니즘이라는 새로운(혹은 자신들의 것과는 다른) 문화와 사상 앞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들이 신앙인으로서 겪는 어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며,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을 함께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화려한 문화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걸어가야 할 길을 쉽게 잃어버리곤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따르는 자극적인 문화를 좋아하고, 헛된 우상들에 제물을 바치고, ‘거룩한 쉼’이라는 주일의 의미도 잊어버립니다. 또한 우리가 믿고 따르는 성경과 교회 전통을 등한시하고,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여기는 가치관을 가장 훌륭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인 우리가 우리의 전통을 저버리고 그들과 같아지려고 하면 할수록, 마치 그리스인들이 유다인들을 보고 그랬던 것처럼,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더욱 우습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처럼 마카베오기를 통해서, 세상의 것과는 다를 수 있는 우리들만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며 살아갈 때,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이 세상 안에서 더욱 빛날 수 있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2024년 2월 4일(나해) 연중 제5주일 서울주보 5면, 박진수 사도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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