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구원의 보편성을 위한 배타성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멸망한 후, 기원전 586년 남유다도 바빌로니아에 멸망하게 되고, 수많은 유다인들은 바빌로니아로 끌려가게 됩니다. 바빌로니아 유배라는 이 고통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준 것은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가 반포한 ‘키루스 칙령’(기원전 538년 경)입니다. 이 칙령은, 피정복민들이 자신들이 살던 지역으로 돌아가서 성소(聖所)를 재건하고 자신들의 고유한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허락했는데, 유다인들 역시 이 시기에 바빌론에서 유다 땅으로 귀환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에 관한 역사를 전해주는 책은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입니다. 에즈라는 사제이며 율법학자로서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말씀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끈 종교적 지도자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사회 내부의 불의도 개선하려고 노력한 사회적·정치적 지도자였습니다. 유다 공동체를 재건하는 데 앞장섰던 이 두 지도자가 공통되게 한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유다인을 이방인과 분리시킨 일입니다. “(모세의 책에) 이러한 사실이 쓰여 있음을 발견하였다. 곧 암몬인과 모압인은 하느님의 회중에 영원히 들어올 수 없는데 … 백성은 이 율법을 듣고 이스라엘에서 모든 이방 무리를 분리시켰다.”(느헤 13,1-3) 즉 에즈라와 느헤미야는 유다교의 율법을 배타적으로 적용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만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타성은 당시의 상황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랜 유배 후에 돌아온 상황에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정립하기 위해서는, 이방 민족과 결혼하던 관습이나 이방인과 섞여 지내던 것들을 과감히 멀리하고 율법을 원칙대로 지켜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저자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이 시기에 배타성만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유배 이후 귀환’이라는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제 2·3 이사야서가 대표적이며, 여기에서는 하느님 구원의 보편성을 이야기합니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이사 49,6) 이 구절을 보면, 하느님 구원의 보편성에서 중요한 특징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다른 민족을 구원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구원에서 배타성을 강조하는 에즈라기와 느헤미야기 그리고 이와 달리 구원의 보편성을 이야기하는 제 2·3 이사야서를 우리는 다음과 같이 조화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공동체로 새롭게 일어서야 할 이스라엘에는 우선 외부와 경계를 분명히 하고 규정을 엄격히 지키는 배타성이 요구됩니다. 하지만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따르는 공동체로서, 궁극적으로는 다른 민족들을 하느님 구원으로 이끄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보편성을 위한 배타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요청됩니다. 먼저 나의 신앙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통해 다른 이들도 하느님의 자녀로 초대하는 것. 이것이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으로 불림을 받은 우리 신앙인들의 올바른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2024년 4월 7일(나해)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서울주보 5면, 박진수 사도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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