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 문장’의 유래와 의미
사목 표어 제시하고 교회 수호 직무 형상화 - 주교나 대주교, 추기경들은 문장의 이미지로 자신의 직무와 사목표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뮈텔 대주교, 최기산 주교, 김선태 주교, 문창우 주교 문장. 지난 3월 18일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에 임명된 이경상(바오로) 주교의 문장이 공개됐다. 가운데 그려진 죄수의 목에 채우던 나무로 된 칼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순교 정신을, 칼의 좌우로 빗장이 풀려 있는 모습은 우리가 주님의 사랑으로 인해 자유로워짐을 형상화 했다. 다양한 상징이 담긴 이미지를 합치자 웃는 모습이 보인다. 이 주교는 공동체 생활의 기쁨을, 세상을 향해 기쁜 소식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는 평소 유쾌한 미소로 신자들과 만났던 이경상 주교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주교로서 새로운 여정을 알리며 만드는 문장. 그 중요한 순간을 상징하는 이미지에는 어떤 의미와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문장의 유래는 12세기 유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군과 적군을 식별하기 위해 방패에 문양을 그려 넣었던 전통이 왕이나 귀족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심벌로 발전했고 13세기에는 가톨릭교회로 확대, 성직자들도 문장을 사용하게 됐다. 주교나 대주교, 추기경들은 문장의 이미지로 자신의 직무와 사목표어를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문장은 모자와 지팡이, 방패, 수실로 구성된다. 주로 상단에 배치되는 예모(禮帽)와 좌우로 늘어진 수실은 주교의 직위를, 방패는 교회를 수호하는 주교의 직무를 나타낸다. 하단에는 사목표어가 들어간다. 직위를 나타내는 수실은 주교는 3단(6개), 대주교는 4단(10개), 추기경은 5단(15개)이다. 모자, 수실, 지팡이, 방패가 들어가는 구성은 동일하지만, 방패 안에 그려진 이미지나 색깔을 달리해 각자의 영적 가치관을 보여준다. 전 광주대교구장 최창무(안드레아) 대주교 문장의 예모는 갓 모양으로, 한국 선교 초기 선비들이 진리를 배우고 증거의 삶을 살아간 복음화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제주교구장 문창우(비오) 주교는 문장의 제일 밑에 예모를 뒀다. 섬김과 사랑의 봉사직이라는 주교의 직무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예모와 수실의 색은 주로 주교와 대주교는 녹색, 추기경은 붉은색을 쓴다. 하지만 성직자로서 지향하는 가치를 다른 색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의 예모는 겸손과 가난의 상징이자 탁발 수도회인 가르멜 수도회의 전통적인 색인 갈색이다. 전 인천교구장 고(故) 최기산(보니파시오) 주교의 문장은 주황색 예모와 수실이 눈에 띈다. 따뜻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려는 마음을 색으로 반영한 것이다. 방패 안에는 사목표어를 상징하는 이미지는 물론이고 지역의 특징을 담은 이미지를 넣어 교구에 대한 애정을 보여 주기도 한다. 제주교구장 문창우(비오) 주교는 제주를 상징하는 한라산과 파도를, 춘천교구장 김주영(시몬) 주교는 산(山)과 천(川)을 형상화해 교구에 대한 사랑을 담았다. 특별한 모양의 방패도 등장한다. 전주교구장 김선태(요한 사도) 주교 문장의 부채 모양 방패는 전통이 살아있는 전주를 연상케 한다. 전 군종교구장 유수일(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는 방패 밑에 뒤집어 놓은 방탄모를 넣었다. 지상의 모든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홍수를 대비하고 있는 강한 ‘군종방주’를 의미한 것. 한국교회의 역사적 아픔도 문장 안에 담겨 있다. 제8대 조선대목구장 뮈텔 대주교는 가시와 장미 덩굴이 태극 문양을 떠받치고 있는 문장을 통해 박해 속에 피어나는 한국교회를 표현했다. 문장의 디자인은 평신도 성미술 작가나 미술에 조예가 있는 사제에게 의뢰한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제5대 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는 “수도회가 운영하는 출판사 디자인실과 협의해 문장을 완성했다”며 “베네딕도회의 전통을 계승하겠다는 다짐과 ‘주님께 노래하라’는 사목표어를 잘 보여주기 위해 문장 제작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문장은 교구 공식문서에 쓰이거나 성당 입구에 걸리기도 한다. 2011년 전주교구에서는 승암산 개발 기금 마련을 위해 당시 교구장 문장이 그려진 부채를 제작해 판매하기도 했다. 박현동 아빠스는 “자신의 사목 방향을 밝히고, 하느님이 해주시는 말씀이 담긴 문장은 단순한 이미지라기 보다는 각 공동체의 가치관을 상징하는 의미있는 심볼”이라고 밝혔다. [가톨릭신문, 2024년 4월 7일, 민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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