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함께 “교리 문해력” 높이기 (3) 인간은 하느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이성의 타고난 빛” 어쩌다 한 번씩 신자분들과 교리 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아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습니다. 어떤 규정에 대한 질문처럼 ‘이건 이겁니다’ 라고 간단하게 답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닐 때가 참 많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라고 정리한 분에게 ‘그건 이런 점들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라며 새로운 혼란을 안겨 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인간은 하느님의 신비에 대해 이해할 수 없으니 그저 믿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대화가 끝나 버립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형언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고, 볼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 (비잔틴 전례,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감사 기도) 분이시며 인간의 말은 언제나 하느님의 신비에 미치지 못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42항).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인간이 하느님께 대한 신비를 이해해 보고자 노력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말한다면 교회가 지금까지 수많은 논쟁을 통해 발전시켜 온 교리 내용들은 무의미한 것이 되고, 하느님은 우리와는 동떨어진 분으로 여겨질 수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이 신앙의 진리들을 세속 학문들의 기초 위에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자 한 신학대전을 집필하다가, 말년에 자신이 쓴 것은 모두 지푸라기처럼 보인다며 중단했다지만 그건 그만큼 하느님을 이해해 보고자 노력한 뒤에야 만나게 되는 경지일 겁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이 이성의 타고난 빛을 통해서 피조물로부터 출발하여 만물의 근원이며 목적이신 하느님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고 가르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36항).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인간에게 알려 주시기 위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인간을 찾아오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며 인간은 그분의 모습대로 창조되어 그분을 알고 사랑하도록 부르심을 받아 그분을 찾고 있는 존재이기에(가톨릭 교회 교리서, 31항) 자신의 능력으로 인격적인 하느님의 존재와 그분께 대한 신비들에 대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질서와 아름다움과 같이 우리들을 둘러싼 피조물들과 세계에 대한 탐구, 자유와 양심의 소리나 무한함과 행복에 대한 갈망 등 인간에 대한 탐구들을 통해 우리는 세계를 창조하신 분, 우리 영혼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32-33항). 과학의 발전과 함께 세계에 대한 인류의 이해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고, 인공지능처럼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이 더욱 중요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실험 가능한 지식만을 의미 있다고 주장하는 우리 시대의 정신은 하느님께 대한 지식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자 하지만 세계와 인간에 대한 탐구가 중요해지면 중요해질수록, 그 깊이를 더해가면 갈수록 오히려 우리는 그 근원에 자리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됩니다. QR코드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이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교리서 51~58쪽, 27~49항을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2024년 4월 14일(나해) 부활 제3주일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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