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신앙의 신비여!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은 서로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구약의 많은 내용은 신약에 영향을 주고, 신약의 많은 내용은 구약의 내용을 전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신약이 구약에 숨어 있고 신약으로 구약이 드러나도록 지혜롭게 마련하셨다.”(<계시헌장>, 16항) 예를 들어, 창조주 하느님에 대한 신앙, 하느님 모상으로서 인간, 십계명 등 구약의 가르침은 신약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당연히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구약을 알아야 합니다. 두꺼운 구약성경 내용 전체를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선택’과 ‘계약’입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들이 계약을 지키면 구원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벌을 받습니다. 하느님 백성은 때로는 하느님 뜻에 맞게, 때로는 죄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백성이 지었던 죄중에 가장 큰 죄는 ‘우상(偶像 Idol)숭배’입니다. 이는 하느님이 아닌 것을 하느님처럼 여기는 것, 인간에게 바랄 수 없는 것을 인간에게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느님이 아닌 것을 마치 하느님처럼 여기거나, 자신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하느님을 상상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입니다. 인간의 삶은 짧지만, 삶의 온갖 괴로움 때문에 인생이 길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즉각적이고 현세적인 행복을 얻기 위해 점을 보러 다니거나, 물질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기도 하며, 인터넷에서 본 영상물을 절대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없는 사람과 신앙인은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신앙인은 하느님 때문에 행복한 사람, 하느님만으로 충분한 사람입니다. “신앙의 신비여!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미사 중 사제는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 받아마셔라.”라는 예수님의 성찬 제정문을 읊은 후, 신자들을 향해 신앙이 ‘신비’라고 선포합니다. 빵이 예수님의 몸으로 바뀌는 하느님의 신비를 인간은 머리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신앙은 참으로 신비입니다. 신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유일하고 전능하신 분이라고 믿는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붙잡을 수 있는 힘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과 하느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때로 인간은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욕심대로만 살다가 결국 큰 코 다칩니다. “인간의 비참함을 모르고 하느님을 아는 것은 오만을 낳는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고 인간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파스칼, ≪팡세≫) 인간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순명해야 합니다. 동시에 신앙을 가진 것이 세상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쩌지 못하는 삶과 죽음을 하느님께, 즉 하느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믿고 맡기며 살아야 합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리 1,21, 공동번역) [2024년 5월 12일(나해)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서울주보 5면,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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