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읽는 단편 교리] ‘사도’ 바르나바 명동대성당 제대 뒷면에는 사도들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초상화들을 세어보면 12명이 아니라 14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열네 사도 초상화’인데요, 1926년 장발(張勃, 루도비코, 1901-2001) 화백이 완성한 작품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열두 명에다 사도 바오로와 그의 동행자 바르나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도’(apostolus)는 좁은 의미로 예수님께서 선택하여 사도로 삼은 열두 제자를 가리키는데, 넓게는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지도자들(1코린 12,28), 더 넓게는 특정 지역에 그리스도교를 전한 대표 선교사를 가리킵니다. (성 치릴로와 메토디오를 ‘슬라브 민족의 사도’, 성 파트리치오를 ‘아일랜드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바르나바는 열두 제자 중 하나가 아니지만, 넓은 의미에서 사도로 불립니다. 그에 관해서는 사도 4장에 자세히 소개됩니다: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36-37절). 바르나바의 활동은 사도 바오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바오로가 회심하고 다마스쿠스를 거쳐 예루살렘에 왔을 때, 열두 사도와 바오로를 중재해준 이가 바르나바입니다(사도 9,26-27). 바르나바는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에게 파견을 받아 안티오키아 교회를 돌보게 되는데, 그때 타르수스에 머물고 있던 바오로를 데려와 그곳 교회를 함께 이끌었습니다(11,22-26). 또한 큰 기근이 들었을 때,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모은 헌금을 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전달하였습니다(11,29-30), 바오로의 ‘제1차 전도 여행’에 동행한 그는(13,1-14,28) 49년경 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도 참석하였습니다(갈라 2,1-10). 50년경 떠난 ‘제2차 전도 여행’ 때, 바르나바는 요한 마르코의 동행 문제를 두고 바오로와 의견이 갈려 결국 마르코와 함께 키프로스 섬으로 떠나 그곳에서 전도하게 됩니다(15,36-40). 한편, 1코린 9,6에 의하면, 사도들 중 교우들에게 신세 지지 않고 스스로 노동해서 생계비와 전교 여행 비용을 충당한 이는 바르나바와 바오로뿐으로 보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0-215)와 에우세비오(260/265-339)는 바르나바가 루카 10,1-12에 언급되는 일흔두 명의 제자 중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전승에 의하면, 바르나바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였고 「바르나바의 편지」(Epistola Barnabae)를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그가 언제 어떻게 사망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습니다. 다만, 5세기에 쓰인 「바르나바의 전도 여행과 순교」에서는 키프로스 섬에서 순교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488년에 바르나바의 것으로 보이는 무덤이 키프로스 섬 살라미스에 있는 성 바르나바 수도원 근처에서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은 6월 11일입니다. [2024년 6월 9일(나해) 연중 제10주일 의정부주보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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