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추기경 김수환 스테파노’ 세 단어 모두 의미 깊습니다. ‘추기경’은 가톨릭교회의 중요 책임자를 의미하고, ‘김수환’이란 이름은 가톨릭 신자는 물론, 한국 사회에도 중요합니다. ‘스테파노’ 성인은 그리스도교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예수님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초기 교회 공동체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리기 위해 증언과 선교를 했고, 이에 반대하던 유다인들과 충돌합니다. 초기 교회 일곱 봉사자 중 하나로 추정되는 스테파노는 은총과 능력이 충만하였고, 큰 이적과 표징을 일으켰습니다.(사도 6,8 참조) 천사의 얼굴을 하였던 스테파노는 최고 의회 연설로 유다인들과 논쟁을 벌였고, 결국 신성 모독으로 고발당한 후 성 밖으로 끌려 나가 죽임을 당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60) 이후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시작되었고, 제자들은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집니다. 그리스도교 첫 순교자의 죽음에 사울이라는 젊은이가 찬동하였고, 그는 교회를 없애려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와 여자를 끌어다가 감옥에 넘겼습니다.(사도 8,1-3 참조) 사울은 어린 시절 유명한 랍비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격한 유다교 교육을 받았고,(사도 22,3 참조) 벤야민 지파 출신으로 율법을 중시하고 종교적으로 충실한 골수 바리사이였습니다.(필리 3,5 참조)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믿음이나 당시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가르침은 그에게 가당치 않은 주장이었기에, 박해의 선봉에 나섰습니다. 박해자 사울은 더 큰 박해를 위해 떠나던 중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극적인 회심을 합니다.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사도 9,5) 사흘 동안 보지 못했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주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후 사울은 사도들과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님을 선포합니다. 이후 1차 선교여행 때부터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사도 13,9 참조) 사도 바오로라는 이름은 후대에 그리스도교 최초의 신학자, 이방인들의 사도, 열정적인 선교자, 불굴의 증거자로 기억됩니다. 김수환 추기경, 첫 순교자 스테파노, 사도 바오로. 이 세 사람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 사람은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믿음보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인간의 생각과 마음은 결코 인간에 대한 하느님 마음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하느님 뜻이 언제나 먼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도하실 때 우리에게 ‘아버지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라 가르쳐 주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날 밤 겟세마니에서도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non mea, sed Tua)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 22,42)하고 기도하셨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성인들이 위대한 이유는 그들에게 특별한 능력과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마음이 가난했기 때문에 오직 하느님만을 믿고 따를 수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필리 1,21 공동번역) [2024년 9월 29일(나해)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서울주보 5면,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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