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함께 “교리 문해력” 높이기 (27)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 - 총괄 실현(Recapitulatio)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을 위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마도 함께 있어 주는 것일 겁니다. 자녀를 양육하는데 정답을 없겠습니다만 부모가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갖는 것만큼 좋은 것은 별로 없을 겁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우리가 서로 사랑을 나누는데 있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사도 신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은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고백에 이어 강생(잉태와 탄생)과 파스카(수난, 십자가에 달리심, 돌아가심, 묻히심, 저승에 가심, 부활, 승천)의 신비에 대한 고백이 이어집니다. 강생과 파스카 사이, 그러니까 3년간의 공생활 동안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활동하신 내용에 대해서는 따로 고백하지 않으며, 공생활 3년의 10배에 달하는 나자렛에서의 긴 시간들은 복음서조차도 우리에게 그 내용을 거의 전해주지 않습니다. 복음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임을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주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요한 20,31 참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복음에서 생략하는 예수님의 시간들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지상 생활 전체는 인간을 향한 지극한 사랑의 표현으로 인간의 모든 삶에 함께하셨던 시간들입니다. 부모에게 온전히 의지할 수밖에 없는 어린 아기의 시간, 부모에게 순종하는 평범한 한 아이의 시간, 마을의 평범한 청년으로 사람들과 어울린 시간, 목수라는 노동자의 시간부터 시작하여 가난한 이들, 병자들, 세리와 창녀, 죄인들과 함께하셨던 시간, 반대로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과 했던 논쟁의 시간, 모든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우리의 모든 고통에 함께하시고 죽음까지도 함께 경험하신 모든 시간들은 모든 사람들과 모든 시간을 함께하고자 하신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 곧 그분의 말씀과 행동, 침묵과 고통, 존재와 표현 방식 전부는 성부 하느님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여주시는 “계시”입니다. 그분이 지상에서 우리가 함께하였던 모든 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것들이었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516항). 또한 그분의 전 생애는 바로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구속”의 신비입니다. 마구간 구유에 누운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그분의 강생은 스스로 가난해지시어 그 가난으로 우리를 오히려 부요하게 하시는 것이었고, 그분의 숨겨진 유년기와 청년기는 순종으로 우리의 불순종을 보상하는 것이었으며, 그분의 말씀은 듣는 이를 깨끗하게 정화하고 치유와 구마로 우리의 허약함을 맡아 주시고 우리의 병고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수난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517항). 이와 같은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우리는 ‘총괄 실현’(recapitulatio)의 신비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심으로써 자신 안에서 인간 역사 전체를 총괄적으로 실현하신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 아담 이후의 모든 인류는 하느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로 인하여 그분의 강생 이전을 포함하여 세상 끝날까지의 모든 인류가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과의 친교를 회복시켜 주시려고 인생의 온갖 단계를 거치셨습니다. QR코드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이북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교리서 220~245쪽, 512~570항을 함께 읽어보시면 좋습니다 [2024년 10월 6일(나해) 연중 제27주일 춘천주보 4면, 안효철 디오니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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