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그리스도인 희망의 근거 – 하느님 사랑 루카복음 16장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가 있습니다.(16,19-31) 평소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던 부자와 그 집 대문 앞에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는’ 거지 라자로가 등장합니다. 각자 지상 삶을 마친 후 두 사람의 상황은 반대로 바뀝니다. 라자로는 아브라함 곁에 머물고, 부자는 저승 불 속에서 고초를 겪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어떤 말씀을 하고자 하실까요? 먼저 부자는 죽은 다음 왜 비참하게 됐을까요? 사는 동안 거지 라자로를 돕지 않아서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지금 이 세상에 거지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모두 죽은 다음 저 부자처럼 저승의 불 속에서 고초를 겪을 것입니다. 아니면 예수님은 부자들을 미워하실까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루카 18,25)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지만, 이는 모든 부자를 향한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들, 오직 자신만 아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예수님은 평소 제자들과 복음을 선포하며 다니셨고, 그 많은 사람이 먹고 마시고 자기 위해서 여러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으며, 당연히 당시 부자들의 도움도 여러 번 받으셨을 것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복음 말씀에는 그 부자가 어떤 악행을 저지르거나 죄지었다는 증언도 없습니다. 아마도 부자가 죽은 후 벌 받은 이유는 사는 동안 하느님을 찾지 않고, 하느님 없어도 살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라 추정됩니다. 딱히 큰 죄 짓지 않아도 하느님 없이 자기 맘대로 사는 사람은 나중에 심판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문제는 ‘라자로는 왜 구원을 받았는가.’입니다. 복음에는 라자로가 구원받기 합당한 행동을 한 정황이 전혀 없습니다. 사실 이 비유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희망과 약속을 상징합니다. 사는 동안 어려운 일이 참 많고, 때로는 삶이 버겁습니다. 하느님이 계신데 왜 죄 없는 사람이 고통받고, 악한 사람이 편하게 살까요? 왜 하느님을 믿는 우리에게 삶이 이리 고단할까요? 확실한 사실은 하느님께서 지금 우리 처지를 잘 아시고, 지금 우리가 겪는 고통을 나중에 다 갚아 주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을 부활시키셨던 것처럼, 라자로같이 하느님 믿고 따르는 사람, 고통 중에 사는 사람도 결국 그 품에 안길 것입니다.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불신이 만연해도 우리는 주님만을 믿고서 살렵니다.” 가톨릭성가 28장의 가사처럼 사는 동안 하느님 믿고, 그 말씀 따라 사는 사람은 결국 복 받을 것이고, 하느님 없이 사는 사람은 결국 벌 받을 것입니다. ‘상선벌악’(賞善罰惡). 가톨릭교회는 이 ‘믿을 교리’를 통해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시편 1,1-2) [2024년 10월 27일(나해) 연중 제30주일 서울주보 5면,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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