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난파 후 받게 되는 두 번째 뗏목 박사 학위 공개 심사를 앞두고 가장 많이 신경쓰였던 것은 다름 아닌 참석자들이었습니다. 내 이탈리아어가 어떻게 들릴까, 교수님들의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비웃음을 사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심사 날이 다가왔습니다. 정신없이 교수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긴장된 마음으로 발표를 시작하려는데, 강의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시선이 비로소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광경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상상했던 것은 “네가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겠어.”라는 시선이었는데, 저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은 “제발 잘 통과해야 할 텐데, 심사가 너무 깐깐하면 안 되는데⋯.”라는 걱정과 애정이 가득한 시선이었습니다. 공개 심사가 끝나고 얼마나 반성했는지 모릅니다. 혼자 마음의 문을 닫고 이유 없이 다른 사람들을 의심한 제가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는 고해성사가 부담스럽습니다. 좁은 공간에 들어가 심판받는 기분이고, 고해 사제가 내가 누군지 알아채지는 않을까 걱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고해를 미루거나 형식적인 죄만 간단히 고백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학창 시절 어리석었던 저의 모습처럼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는 커다란 착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외아들까지 보내시어 인간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요한 3,16)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고해성사를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 그렇다면 우리는, 고해가 죄를 심판받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의 성사’라는 것을 꼭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가톨릭교회는 이 고해성사를, “은총을 잃어버리는 난파 후 받게 되는 두 번째 뗏목”이라고 정의합니다. 첫 번째 뗏목이 세례성사라면 두 번째는 고해성사입니다. 즉 고해성사는 세례성사 후 하느님과 사랑을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지요. 우리는 놓치지 않고 이 뗏목을 붙들어야 합니다. 이 성사를 통해 우리는 죄로 잃었던 하느님의 은총을 다시 받고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며, 영원한 벌(지옥 형벌)을 면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나약하며 종종 길을 잃지만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도구를 이용해서 우리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십니다. 이러한 어버이의 마음을 기억하시면서 죄를 지었을 경우, 혹은 분명한 죄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보다 적극적인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보시길 바랍니다. 바로 그때 하느님께서는 잃어버린 어린양을 되찾은 목자의 마음으로 우리를 사랑으로 끌어안아 주실 것입니다. [2024년 12월 8일(다해)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사회 교리 주간)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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