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믿나이다] (7) 하느님의 믿음 갖기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 하느님의 믿음을 가지십시오 - 사도행전은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 곧 교회의 기원을 정확히 서술하고 있다. 사진은 예루살렘 주님 무덤 성당 내 예수님의 빈 무덤. 하느님의 의로움을 은총으로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애와 공정·정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의로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성화의 길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진실로 살펴야 할 삶의 실천 덕목입니다. 우리 신앙에서 하느님 말씀을 향한 경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봤습니다. 이제부터는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 곧 교회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기원했는지, 곧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는 사도행전에 정확히 기록돼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사도들에게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저자 루카에 따르면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복음은 맨 먼저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선포되어 사마리아까지 전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들과 특히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를 통해 소아시아와 로마, 땅 끝까지 복음이 들불처럼 퍼져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루카는 그의 스승인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 머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게 되자 아래 글로 사도행전을 마칩니다. “너는 저 백성에게 가서 말하여라.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을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이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느님의 이 구원이 다른 민족들에게 보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들을 것입니다.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사도 28,26-31) 사도행전은 십자가형으로 돌아가시고 묻히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어 승천하기까지 40일간 사도들에게 살아있는 분으로 나타나 하느님 나라에 관해 말씀하시고 가르치셨음을 알려줍니다. 주님 부활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입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야고보에게, 또 이어서 다른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나 그들이나, 우리 모두 이렇게 선포하고 있으며 여러분도 이렇게 믿게 되었습니다.”(1코린 15,3-11) 주님 부활을 목격한 사도들은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지역 유다인들에게, 또 사마리아와 해외에 사는 디아스포라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에게 “그대가 예수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로마 10,9 참조) 사도들이 선포한 이 복음이 우리 그리스도인 신앙의 토대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통해 구원을 받습니다.(1코린 15,1-2 참조) 아울러 이 신앙의 토대가 모든 그리스도인을 하나로 묶습니다. 과학을 신봉하는 현대인들의 논리대로 ‘빈 무덤’ 자체가 부활의 증거가 될 순 없습니다.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대로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님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누군가 주님의 시신을 옮긴 것으로 의심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 시대나 지금이나 무덤에 주님의 시신이 안치돼 있는 한 그분께서 부활했다고 선포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분명 빈 무덤 자체가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할 순 없지만 몸과 인격 전체와 상관되는 부활 신앙을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그리스도교답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들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주님 부활을 말하면, 그리스도인들과 똑같이 인간 예수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일반인들은 그들과 거리를 둡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사도들이 선포한 그 복음과 달라서일까요? 현대 신학자 토마시 할리크 신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믿음을 가지시오’라고 말씀하신다. 번역을 신중하게 하는 바람에 이 문장의 의미가 ‘하느님께 믿음을 가지시오’라는 식으로 희석되고 왜곡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더 많은 내용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주체’이다.”(「그리스도교의 오후」 183쪽)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2월 25일, 리길재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