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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생활교리: 십자가 죽음에 관한 몇 가지 물음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3-12 조회수9 추천수0

[생활교리] ‘십자가 죽음’에 관한 몇 가지 물음

 

 

첫째,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는가? 우선 예수님 십자가 죽음은 역사적 사건이기에, 그 일이 일어난 요인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당시 종교지도자들과 주요 사안, 곧 율법, 성전, 그리고 유일신 사상 등과 관련되어 논쟁과 마찰을 빚었다. 그 내용을 보자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금지된 병의 치유 활동을 함으로써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거나(마르 3,1-6), 또 성전에 관한 기존의 전통적인 가르침에 벗어나고 위배되는 말씀과 행위로 백성을 오도한다는 것이었다(요한 2,13-22).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선언하신 죄의 용서는 오로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행위로 여겨졌기에(마르 2,7), 종교지도자들은 그분을 하느님 모독자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예수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단지 종교지도자들의 선동과 책략에 따른 잘못과 이를 묵인하고 방관한 사람들에게만 물을 수 없다. 왜냐면 성경의 증언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죄 때문에”(1코린 15,3) 돌아가셨다면, “모든 죄인이 그리스도 수난의 장본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곧 예수님 십자가 죽음이 죄의 용서를 통한 구원의 행위라고 한다면, 그 죽음의 책임 대상은 ‘과거’의 성경 인물들을 넘어 ‘현재’ “계속해서 죄에 다시 떨어지는 사람들”(『가톨릭 교회 교리서』 598)이며, 그들이 바로 ‘지금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탈출 34,6)께서 사랑하는 아들의 비참한 죽음을 원하셨는가? 당시 십자가형은 손과 발에 못 박는 끔찍한 육체적 고통 이전에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태형(笞刑)이 주어졌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끊임없는 조롱과 조소 속에 마지막 시신마저 새들의 먹이로 넘겨주어야 하는 그야말로 치욕적인 죽음이었다. 더군다나 이 참혹한 십자가 죽음이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사도 2,23)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라면, 과연 예수님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궁극적인 뜻은 무엇인가? 단연코 하느님의 계획은, 예수님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그 희생과 봉헌을 통해 이루어지는 우리의 구원이다.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원하는 이는 없다. 다만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요한 3,16) 당신 아들의 십자가 죽음마저도 기꺼이 감당하시는 분이시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죽음을 그저 수동적으로 겪으셨는가?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분명하게 답을 하신다. “아무도 나에게서 목숨을 빼앗지 못한다. 내가 스스로 그것을 내놓는 것이다”(요한 10,18).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원하신 수난이 다가오시자”(『미사통상문』 제2양식) “가장 자유롭게 스스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셨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609). 그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곧 예수님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사랑에 온전히 ‘순명’하시기를 원하셨고, 무엇보다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요한 13,1)하시기 위해 온갖 모함과 배척 그리고 배반 속에서도 당신 자신을 기꺼이 십자가 죽음에 내어 맡기셨다. 결국, 예수님 십자가 죽음은 하느님과 인간을 향한 ‘사랑의 끝장판’으로서, “이제까지 아무도 보지 못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죽음”(성 데레사)이었다!

 

[2025년 3월 9일(다해) 사순 제1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8면, 윤태종 토마스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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