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읽는 단편 교리] 성찬 제정 축성문(Narratio institutionis et consecratio) ‘성찬 제정 축성문’은 감사기도는 물론 미사 전체의 핵심을 이룹니다. 사제는 최후의 만찬 때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던 말씀과 동작을 반복함으로써 빵과 포도주를 주님의 몸과 피로 축성합니다. 그래서 사제가 다른 성사에서 교회를 대신해(in persona Ecclesiae)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과는 달리, 이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in persona Christi) 성사를 거행합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내 피의 잔이니 죄를 사하여 주려고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성찬 제정 축성문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최후의 만찬 대목(마르 14,22-26; 마태 26,26-30; 루카 22,14-20; 1코린 11,23-25)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고정된 본문 없이 미사 주례자가 자율적으로 바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고정되었으리라고 봅니다. 사제가 축성된 성체와 성혈을 높이 들어 올리는 관습은 중세 후기에 도입되었습니다. 당시 사제는 신자들을 등지고 미사를 드렸기에, 제대에서 진행되는 일이 신자들에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잦은 영성체를 금지하던 시기라 신자들은 눈으로라도 축성된 성체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이러한 바람에 응답하여 성체를 들어 올리는 예식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13세기에는 성작(성혈)의 거양과 경배도 도입되었습니다. 성체와 성혈의 거양 때, 신자들은 눈을 들어 성체와 성혈을 바라보고, 사제가 제대 위에 내려놓고 허리 숙여 깊은 절을 하면, 함께 깊은 절로 경배를 드립니다. 그렇다면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하는 성변화의 시점은 언제일까요? 이 점에 관해서는 동방 전례와 서방 전례의 견해가 엇갈립니다. 동방 전례에서는 성령을 청하는 ‘축성 기원’을 성변화의 시점으로 간주하고, 그래서 성령 청원 기도를 매우 중요시합니다. 반면, 서방 전례에서는 ‘성찬 제정 축성문’으로 성변화가 이뤄진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신학자들은 동방 전례가 더 합리적이라고 평가하지만, 성찬 제정 축성문이 성사를 이루는 형상(forma)이라는 점에서 서방 전례도 상당히 타당성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성변화는 감사기도 전체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굳이 시점을 말하자면, 사제가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하면서 두 손을 예물 위에 펴드는 것(축성 기원)에서부터 예수님의 성찬 제정 축성문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25년 3월 23일(다해) 사순 제3주일 의정부주보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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