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믿음 · 희망 · 사랑 : 사랑의 촛불 밝히기 (4) 성장 편 지난 1월, 희년을 맞으며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덕, 믿음·희망·사랑을 키우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사랑의 마지막 편, ‘사랑의 성장’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6-38) 이 성경 구절 안에는 사랑을 키우기 위한 비법 세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사랑은 심판하지 않습니다. 남을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죄하지 말라는 뜻으로 사랑의 초보 단계에 해당합니다. 심판하지 않고 단죄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남을 심판하는 죄를 자주 짓습니다. 심판하는 ‘나’의 기준이 얼마나 부족한지, ‘나’의 잣대가 얼마나 시원찮은지, ‘나’의 정보가 얼마나 부족한지도 모르고서 말입니다. 심판이나 단죄는 정확한 기준과 충분한 정보가 있을 때만 공정하고 유효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신의 기준을 절대시하여 남을 심판하는 대신, 대화와 토론의 과정을 통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판단할 수 있고 심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당신 자신이 기준이며 모든 정보를 갖고 계신 하느님뿐이십니다. 둘째, 사랑은 용서합니다. 살다 보면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잘못하는 이들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상황에도 용서할 것을 명하십니다. 그들을 용서하고 미움의 굴레에서 풀어 주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1코린 13,7) 그렇다면 용서는 누구를 위해 할까요?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입니다. 용서해야 내 마음이 편해집니다. 용서가 쉽게 잘되지 않을 때도 잊어버리고 툭툭 털어 버리는 게 현명한 길입니다. 셋째, 사랑은 베풉니다. 베푸는 것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또한 꼭 무엇이 있어야만 베풀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로마 12,15) 함께하는 것 역시도 베풂이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선교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이미 받은 사랑을 나누는 것이지요.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내가 어려운 일을 겪고 힘들어할 때 함께하시는 예수님, 내가 원하는 것을 청했을 때 들어주시는 예수님, 즉 내가 만난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기에, 또 주님에게서 사랑의 고백을 듣고 있기에,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사도 4,20) 이제,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사랑을 주변에 전하기 위해 적극적인 한 걸음을 내디뎌 보았으면 합니다. [2025년 4월 6일(다해) 사순 제5주일 인천주보 3면, 미래사목연구소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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