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서 DOCTRINE

교리 자료실

제목 저는 믿나이다23: 열두 사도의 차별성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4-22 조회수33 추천수0

[저는 믿나이다] (23) 열두 사도의 차별성


예수님과 생활한 열두 사도의 특별함

 

 

- 열두 사도는 예수님께서 당신 의지로 선택한 이들이지만, 이 결정은 기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일치된 대화의 결과였다. 곧 열두 사도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일치된 결정으로 선택된 이들이다. 프라 안젤리코, ‘산상설교’, 1437~1445, 산 마르코 수도원, 피렌체, 이탈리아.

 

 

복음서가 증언하듯이 예수님께서 친히 뽑으신 사도는 모두 열둘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반석이 되어라 하여 ‘베드로’라고 이름을 바꿔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두 명의 야고보를 구별하기 위해 제베대오의 아들을 대(大)야고보, 알패오의 아들을 소(小)야고보라 부릅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을 팔아넘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유다의 빈자리는 마티아 사도가 선택돼 채웁니다.(사도 1,15-26)

 

신약 성경은 이들 열두 사도 외에도 바오로와 바르나바,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안드로니코스, 유니아 등을 사도라 부릅니다.(1코린 9,6; 갈라 1,19; 로마 16,7) 이들은 예수님이 직접 뽑은 사도들이 아닌데 어떻게 교회 안에서 사도로 불릴 수 있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은 주님 부르심을 받고 복음 선포 사명을 띠고 파견된 자들이어서 사도라 불렸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증언에서 사도직의 정당성을 잘 파악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부르심을 받고 사도로 파견됐다는 점을 강조합니다.(로마 1,1; 1코린 1,1; 갈라 1,1) 바오로는 자신이 선포하는 복음을 사람에게서, 곧 교회 전승을 통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직접 받았다고 강조합니다.(갈라 1,11-16) 그리고 자신의 사도직 활동 중심에는 하느님의 행위가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자유인이 아닙니까? 내가 사도가 아닙니까? 내가 우리 주 예수님을 뵙지 못하였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이 바로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 나의 업적이 아닙니까? 내가 다른 이들에게는 사도가 아니라 할지라도 여러분에게는 분명히 사도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주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 사도직의 증표입니다.”(1코린 9,1-2) 바르나바는 이방인 선교를 위해 사도들에 의해 안티오키아로 파견됩니다.(사도 15,22-35)

 

그런데 ‘사도’라 할 때 흔히 열두 사도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뽑으신 이들이 대표성을 지닌 사도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교회는 사도로부터 이어 온다. 교회는 든든한 기초, 곧 어린양의 열두 사도 위에 세워졌으며, 무너질 수 없다. 교회는 진리 안에 확고하게 서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후계자인 교황과 주교단 안에 현존하는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을 통해 교회를 다스리신다.”(「가톨릭교회 교리서」 869)

 

열두 사도의 대표성·차별성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첫째, 이미 지난호에 설명했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뽑으신 사도들이라는 점입니다. 마르코·마태오·루카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기도한 다음 사도들을 뽑았다고 합니다. 곧 사도 선별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시던 기도 중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마음에 든다고 무턱대고 뽑은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열두 제자의 부르심은 단순히 기능분담이라는 범위를 훨씬 뛰어넘는, 철저하게 신론적 의미를 띠게 된다. 그들의 부르심은 아드님이 아버지와 나눈 대화에서 나온 것이고 거기에 뿌리내리고 있다.”(베네딕토 16세 교황,「나자렛 예수 1」 261쪽)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가르침대로, 열두 사도의 부르심은 예수님께서 당신 의지로 결정한 선택이었지만, 이 결정은 기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께서 일치된 대화의 결과였습니다. 곧 열두 사도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일치된 결정으로 선택된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차별성과 대표성이 있겠습니까!

 

두 번째 차별성은 열두 사도는 늘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주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하나이심을 배워 그리스도의 신비와 하느님 나라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양성되었습니다.

 

사도들도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것이 사도성의 중요한 요소임을 자각했습니다. 비록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은 아니지만 예수님과 열두 사도는 하느님 나라의 친교에 뿌리를 둔 새로운 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가 유다 이스카리옷의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마티아 사도를 선출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사도 1,21-22)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족이 된 결속력이 복음 선포를 위한 파견의 원동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존재 전체가 파견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 차별성은 열두 사도는 땅 끝에 이르기까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을 받고 파견된 이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치유 기적을 행했습니다.

 

이미 밝힌 대로 사도들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주님 부활을 증언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은 세상 사람들이 이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이도록 선한 권능으로 하느님 표징을 드러냅니다. 사도들은 주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족이 되었듯이, 그들도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모아 하느님의 새 백성, 교회를 이룹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4월 20일, 리길재 전문기자]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