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그리스도인의 기복신앙 ‘기복신앙’은 종종 물질적인 복만을 추구하는 왜곡된 신앙이라고 비판을 받습니다. 하지만 기복신앙이 우리 삶에 해롭기만 한 것일까요? 인간이 신에게 간절하게 도움을 구하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종교의 모습이며, 신앙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모든 종교에는 고통과 질병에서 벗어나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간구하는 기복적인 요소가 존재합니다. 성경에서도 복은 하느님의 약속으로 표현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창세 12,2) 야곱도 야뽁 강가에서 하느님과 씨름하며 “저에게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놓아 드리지 않겠습니다.”(창세 32,27)라고 말하며 주님께 간절히 복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 7,9.11) 이 말씀을 근거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 청하면 복을 받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무게 중심을 지나치게 기복에만 치우치게 된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실패를 경험하거나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믿음과 기도가 부족했다고 자신을 탓하거나 하느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둘째,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행복만을 바라게 되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려는 복음의 본질을 외면할 위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 위에서 가르쳐 주신 ‘참 행복’을 생각해 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3.9) 여기서의 복은 단순한 물질적인 축복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향한 영적인 갈망을 가진 이들이 누리는 영원한 행복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재물보다 더 가치 있는 천상의 유산을 상속받는 기쁨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와 미사 안에서 주님께 복을 청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셨던 삶을 돌아보면, 기복적인 것에만 매달릴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십자가의 고통을 선택하셨고, 우리에게 완덕에 이르는 길을 알려 주시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그분의 삶을 따를 때, 비로소 진정한 지복(至福, beatitudine, 완전한 선)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길 끝에서 누리는 축복은 그 어떤 물질적인 복보다 더 크고 깊으며, 영원할 것입니다. [2025년 4월 27일(다해) 부활 제2주일(하느님의 자비 주일) 서울주보 5면, 전인걸 요한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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