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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신학: 신앙생활은 꼭 필요합니다!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7-05 조회수10 추천수0

[가톨릭 신학] 신앙생활은 꼭 필요합니다!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순교자이자 성인이시고, 정치가이자 법률가였던 토마스 모어가 동명 소설 제목으로 쓴 단어입니다. u(없는) + topia(땅), 즉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지상낙원, 모두가 바라지만 ‘지금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를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이 단어와 반대로 ‘디스토피아’(Dystopia)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옥향’ 내지 ‘암흑향’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예를 들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 그려진 사회가 대표적입니다. 이 사회 역시 처음엔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결국 폐쇄적이고 비인간적 공동체로 전락한 사회를 의미합니다. 이 두 개념에 빗대어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는 여행지나 놀이동산처럼 일상을 벗어난 일시적 휴식 공간을 의미합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현실 안에 그럴듯하게 꾸며 놓은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종교는 일종의 헤테로토피아가 아닌가요?” 고단한 현실에서 그저 잠시 위로와 위안을 주는 곳이 아닌가 묻습니다. 한편으로 맞습니다. 예를 들어, 수도원의 짧은 피정이나 여러 프로그램, 혹은 템플 스테이 등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영적인 휴식처가 되고, 잠시의 위안을 주는 장소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수도원 내 피정의 집은 방문자에겐 헤테로토피아가 될 수 있지만, 수도원에 사는 사람에겐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구체적 장소입니다. 수도자(修道者)들은 세속에서 자신을 격리시킨 사람이고, 수도 공동체는 세속의 흐름에 맞선 영적 전쟁의 최전선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지만, 눈에 보이는 이 땅에서 영적 투쟁을 하는 곳이 수도원이고, 신학교입니다. 동시에 그 여정에 실패하면 그곳은 디스토피아가 됩니다.

 

신앙이나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신앙 공동체는 이 세상과 대조되는 사회, 대조사회(對照社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상설교(마태 5-7장 참조)를 근본으로 삼아 세속적인 세상과는 구분되고, 하느님과 온전히 함께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지향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스도처럼(imitatio Christi) 살도록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산다면 교회 안에서 유토피아를 맛볼 수 있을 것이고,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신앙생활이 결코 평화 가득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마르 5,34)라는 예수님 말씀처럼 하느님 은총과 사랑을 알아보고 응답하는 비결은 우리의 신앙입니다. 신앙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줍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이 구원의 올바른 길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5)

 

[2025년 7월 6일(다해) 연중 제14주일 5면,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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