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언어] 라훔, 자비로운 하느님께서는 금송아지 사건으로 깨져 버린 계약을 이스라엘 백성과 다시 맺으시면서 모세에게 ‘야훼’라는 이름과 함께 당신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라고 선포하십니다.(탈출 34,5-7 참조) 히브리인들은 ‘자비’가 ‘모태’(레헴) 안에 혹은 ‘내장’(라하밈 : 1열왕 3,26) 안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모태 안에 아기를 품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이며, 위험에 빠진 이의 고통을 자신의 내장이 끊어지는 고통처럼 느끼는 것과 다르지 않기에, 하느님께서는 우상 숭배의 죄를 지은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고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이 자비로움은 예수님의 공생활에서도 발견됩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마태 14,14; 마르 1,41; 6,34 루카 7,13 등) 그들을 위로하고 기적을 일으켜 치유해 주시며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고 말씀하십니다. 자비는 마음에만 머물지 않고, 행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비하셨듯이 우리도 삶 안에서 자비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2025년 7월 20일(다해) 연중 제16주일(농민 주일) 가톨릭부산 5면, 김병진 바오로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성서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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