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학] 그리스도인의 균형(성사론) 그리스도인은 신앙과 삶 사이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사는 것을 경계합니다. 신앙 따로, 삶 따로 살아가는 모습은, 신앙이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신앙과 일상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요? 그 출발점은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여야 합니다. 인간은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진 존재입니다. 그런데 시대에 따라 이 두 요소 중 어느 하나를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배제하는 경향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고대에는 육체를 ‘영혼의 감옥’이라 여겨 터부시하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기도에 몰입하고 싶지만 피로와 졸음으로 집중할 수 없을 때, 육체는 고귀한 영혼의 갈망을 방해하는 불완전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반면, 현대에 들어서는 영혼이 ‘육체의 감옥’이라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스트레스나 우울함 같은 심리적인 문제로 신체적인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완벽한 외형을 만든다는 신념 하에 강박적으로 육체를 학대하거나 외모에 따라 자존감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현대인의 다친 ‘영혼’은 몸에 죄책감을 덧씌우며, 몸을 억누르는 새로운 감옥처럼 작용합니다. 이러한 양극단에서 무엇이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을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성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추상적 관념이나 보이지 않는 이상으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살과 피가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오셔서 구원의 길을 구체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또한 먹고 마실 수 있는 빵과 포도주라는 물질적 형상 안에 현존하시며, 우리의 육체적 감각으로 그분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또 그리스도의 성사는 율법주의라는 영혼의 감옥에서도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율법주의가 구원을 명목으로 자기 검열을 반복하게 했다면, 그리스도께서는 무상의 은총을 성사의 형식으로 주셨습니다. 이 은총은 우리의 노력에 대한 대가가 아닌, 거저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간혹 교우들은 성사에 대해 ‘주일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식의 강박과 부담으로 느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사는 예수님의 구원 업적에 대해 자녀들이 자발적으로 느끼는 감사와 찬미를 전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사는 단순한 예식이 아니라, 오시는 그분을 우리의 거처에 모셔, 우리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살아가도록 하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우리는 영혼과 육체가 함께 어우러진 존재입니다. 영혼 없이 육체적 유희로만 살 수 없고, 육체 없이 정신적 만족만으로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신앙은 생각으로만 지키는 게 아니라, 몸과 마음의 헌신으로 살아 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그리스도의 감실 앞에 가져감으로써, 영혼과 육체가 함께 거룩해지고, ‘신앙을 삶으로 실현하는(fides qua)’ 균형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2025년 8월 3일(다해) 연중 제18주일 서울주보 5면, 전인걸 요한보스코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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